첫 인상 이론
10대가 푸르렀다고? 아닐걸? 청춘이 다 웬 말? 밤잠 한번 제대로 못자며 입시에 목을 걸고 고생고생해서 들어간 대학. 그러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처음 한 일은 고상한 학문의 상아탑 쌓기가 아니라 남학생들과의 단체 미팅이었다.
여학생 측 주선자로 나선 나는 남녀 각각 25명씩 50명이 들어가는 학교 앞 대형 카페를 빌려서 프로그램을 짰다. 스마트 폰도 없던 시절인데 어떻게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었는지 아무튼 행사 당일 한 명도 빠지지 않고 50명 전원 참석. 이때 만난 남녀 두 쌍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장 4년 연애를 거쳐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 잘 산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여러 쌍이 소위 ‘애프터’라는 2차 코스를 거쳐 한동안 풋사랑인지 첫사랑인지 스토리를 이어갔고 그중엔 남학생의 3년 군복무에 생이별로 가슴 찢는 경험들도 했다.
오지랖 넓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미팅 주선을 하고 연애 상담을 한다고 내 공부는 뒷전. 삼각관계로 고민하는 친구를 위로하며 같이 밤새 눈물 흘리기도 하고, 에라잇 허무한 스무 살, 부어라 마셔라 일탈의 시간도 보냈다. 친구들의 연애사에 함께 마음 아파하며 관악산으로 신촌으로 대학 캠퍼스 순회상담을 해주느라 학사경고 수준이 되어가는데도 나 자신의 머리는 못 깎았다니….
대학 시절을 지나 직장인이 된 후에는 맞선 주선으로 또다시 깃발을 날렸는데 이 기간 나의 눈부신 활약을 통해 세 쌍이 결혼에 골인했다. 이들도 아직껏 부부로 같이 잘 산다. 거리에, 장터에, 수없이 넘쳐나는 결혼 가능 남녀들 사이에 오직 너와 나, 단 둘! 부부로 맺어지는 일에는 인(因)과 연(緣)이 있겠으나 이 과정을 통해 경험한 게 바로 첫인상의 중요성이다. 커플로 맺어진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 심리학의 ‘초두효과 이론’이다. 초두효과(Primary Effect)는 처음 받아들인 정보가 이후에 따라오는 정보보다 강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첫인상에서 받은 정보가 이후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인데 이를 연구한 게슈탈트 심리학의 선구자 솔로몬 애쉬의 실험에 같이 따라가 보자.
여기 A와 B 두 사람이 있다. 이들의 성격을 잘 들어보시라. A: 착하다, 성실하다, 소극적이다, 이기적이다, 비판적이다, 고집이 세다. B: 고집이 세다, 비판적이다, 이기적이다, 소극적이다, 성실하다, 착하다. 당신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끼겠는가? 애쉬 박사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일제히 A에게 더 호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보면 A와 B 모두 같은 성격으로 순서만 바꿔 말했을 뿐이다.
젊은 시절,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 그가 입었던 회색 수트와 페이즐리 무늬의 넥타이를 아직 기억한다. 남편도 하이힐에 핑크색 투피스 차림의 여자가 또각또각 자기 앞으로 걸어오던 순간 이미 ‘이 여자다! 라고 느꼈다’고 말한다. 지금은 어떠냐고? 핫핫핫… 물론 아니다. 남편은 대충 다려서 줄이 두세 개 잡힌 바지도 불평 없이 입는다. 내 요염했던 하이힐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고 대신 앞이 뭉툭한 스니커에 기마자세로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도 남편과 거리낌 없이 시시덕거린다.
첫인상 이론대로라면 우리 부부도 ‘초두효과’에 서로 낚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심리 이론, ‘후광효과’ 덕분일까? 후광효과(Halo Effect)는 사람에게서 한 가지 좋은 점을 보면 다른 점도 다 좋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심리이다. 처음 형성된 인상을 나중에까지 일치시키고 싶은 마음. ‘초두효과와 후광효과’를 안고 우리는 모두 그렇게 어울려 살아간다. www.kaykimcounseling.com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