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수년 전 아프리카 깊숙한 부족마을로 단기선교를 갔다. 현지인들이 맨 손바닥으로 치는 북소리 장단에 맞추어 찬양도 하고 움칫둠칫 율동도 따라했다. 나뭇가지를 꺾어서 지어올린 교회당. 뻥 뚫린 천정 위로는 파란 하늘이고 나무 울타리 벽은 드나들어도 될 만큼 얼기설기 이어졌다. 그게 대수랴. 그들의 찬양은 어느 도시 대형교회의 최고 오디오 시스템보다 더 강렬하게 심장을 두드렸다.

열기로 가득한 예배가 끝나고 드디어 다함께 나누는 친교시간. 현지인들이 십시일반 거둔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며 우리 일행을 식사에 초대했다. 환경은 열악하다. 물 한 동이를 길으러 이웃 마을까지 한 시간 이상 걸어야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무지. 저만치 서있는 아카시아 나무 그늘이 전부인 땅. 닭이 있으면 살만한 가정이고 염소를 키우면 부자인 마을. 그 사람들이 가진 귀한 재산인 닭을 잡아 요리를 했다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한 가운데 지핀 숯불 위에 꺼멓게 그을린 커다란 솥이 걸려있다. 흘낏 들여다보니 닭기름이 노오랗게 떠있다. 뚜껑을 열고 촌장이 손수 나무그릇에 첫 국자를 떠서 내게 건네준다. 앗! 이를 어쩌나! 국물 위에 떠있는 붉은 닭 벼슬… 이후는 생략이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자책할 일이 있을 때는 이 장면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내가 섭취한 음식이 곧 ‘나’이다. 나는 쌀을 먹는다. 주로 채식을 한다. 한국 사람이다. 요즘 식당에 가면 ‘집밥’ 메뉴가 인기다. ‘집밥 식당’이라는 곳도 있는데 이게 말이 되나? 기껏 식당 갔는데 다시 집밥을 찾다니. 간이 세지 않은, 어제 먹은 음식인데 오늘 또 먹어도 조용히 감사할 만한, 한국 가정의 보통 음식이 ‘별미’보다 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까닭이다.

한번은 미국인 친구를 데리고 한식당에서 불고기를 시켰더니 푸릇푸릇 상추쌈이 나왔다. “이거 채식 타코 맞지?” 친구가 묻더니 곧바로 접시 위에 상추를 넓게 펴서 밥 길게 조금, 고기 길게 조금, 그리고 그 위에 살사 대신 쌈장을 놓고 타코 먹듯 베어 문다. “틀린 건 아닐세. 그러나 한식은 말이야~~” 묻지도 않는데 나 혼자 일장연설! 한식의 기본 컨셉을 설명한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밥 한 숟가락, 알맞게 간이 된 반찬 한 가지, 그리곤 또 입안을 밥으로 중립 상태를 만들지. 다시 맵고 짠 깍두기 한 입, 다시 밥 한 숟가락, 다시 나물 한 가지, 다시 밥… 그러니 상 위에 올라앉은 모든 반찬을 한꺼번에 묶어서 한 입에 삼키는 건 한식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닐세, 이 사람아! 친구는 듣는 둥 마는 둥 맛있는 상추쌈 타코로 볼이 메어진다. “식당 푸드 같지 않고 한국인 가정에서 먹는 것 같은 맛이었어. 고마워.” 이 친구도 ‘집밥’ 맛을 안단 말인가?

예전에 다른 직업으로 일할 때 한국 최고 재벌 총수를 인터뷰했었다. 얘기가 길어지면서 런치 때가 되었는데 그분이 비서진에게 부탁한 음식은 ‘호박 수제비’였다. 매일 최고급 정찬에 산해진미가 이어지는 건 신나는 사치가 아니라 고역일 게다. 그 분도 “가끔은 찬밥에 물 말아서 딱 한 가지 입에 맞는 반찬,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신 고향 집밥이 그립다.”고 했다.

소중한 재산을 아끼지 않고 닭 한 마리를 고아 대접했던 그 현지인 마을의 사랑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식량 부족으로 하루 한 끼 먹는 그들의 주식은 간이 없는 옥수수가루 반죽의 떡이다. 주로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의 성격을 말한다. 그때 현지인들이 보여준 너그러운 사랑은 옥수수떡 ‘집밥’으로 그들의 마음이 순한 초식동물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집 밥’, 늘 먹는 음식, 주로 먹는 음식이 곧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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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