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아이구!’는 정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반갑고 좋을 때도 쓰고, 뭔가 실수했다는 걸 알았을 때도 “아이구!”, 슬픔이 북받칠 때나 절망감으로 탄식할 때도 “아이구!” 소리를 낸다. 아이구 없이는 말이 안 될까? 하지만 아이구가 있어야 그 순간의 감정이 가장 잘 표현된다는 걸 한국 사람은 안다. 한국영화 번역(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의 대가로 꼽히는 다씨 파켓은 ‘아이구’가 단순히 ‘오 마이 갓!’은 아니어서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단어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구 뿐만이 아니다. 에그머니, 앗차, 에잇, 휴우, 자, 뭐, 어, 에, 에헴, 에구구, 참, 나 원, 나 원 참, 말이야~ 등등 별 뜻은 없는데 사람들이 버릇처럼 갖다 붙이는 감탄사는 수없이 많다. 감탄사는 자기 느낌을 다른 단어에 붙이지 않고 직접 표시하는 독립적 품사라고 배웠다. 상황에 따라 문장 맨 앞에도 쓰고 가운데나 끝에도 쓴다. 앗쭈, 애개개, 글쎄도 있다. 굳이 안 써도 되지만 그 안에 감정이 담겨있다. 하루에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갈피가 여러 겹이듯, 감탄사 종류도 수없이 많다.

오래 전 토스트 매스터즈(Toastmasters)에 회원으로 참여했었다. 이 모임은 퍼블릭 스피치를 연습하고 리더십을 개발하는데 목적을 둔 국제 비영리단체로 150개 나라에 1만5,000개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는 매번 ‘아 숫자세기’(Ah Counter)를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원고 없이 5분 정도 주제 발표를 하게 되는데 말하는 동안 말문이 막히거나 주저하면서 음~ 어~ 아~ 같은 단어를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세었다가 알려주는 것이다. 음~ 어~ 같은 감탄사를 많이 쓸수록 발표 준비가 덜 된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뜻이고 가능하면 이런 쓸모없는 감탄사를 줄여나가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언어의 유창함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평균 100단어마다 2번 정도의 음~ 어~를 사용하는데 감탄사 없이 너무 완벽하게 말할 경우 오히려 전달력이 떨어졌다는 것. 일리노이대 심리학연구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2가지로 다르게 낭독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하나는 아~ 어~가 섞인 것, 또 하나는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편집하여 들려준 결과 사람들은 감탄사가 포함된 스토리를 훨씬 더 잘 기억했다. 토스트 매스터즈에서 강조한 것처럼 음~ 아~를 없애는 훈련이 듣는 사람들에게 더 좋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는 결론이다. 중요한 회의에서 의견을 낼 때나 학식 높은 교수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기다릴 때는 재빨리 쏟아지는 유창한 답변보다, 흐음~ 아 뭐라고 할까~를 썼을 때, 다음에 나올 내용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또 다른 실험도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자율주행차량에 탑재된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시사항만을 유창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오우~ 아하~ 같은 감탄사를 사용하면서 감정표현을 하게 만든 것을 사용자들이 더 선호하더라는 설명이다. 인공지능이 매끈하게 주제 전달만 했을 경우엔 사용자가 ‘과제’로 인식한 반면, 감탄사와 함께 감정표현을 섞었을 때 신뢰도가 높아지고 앞으로도 계속 이 모델을 사용하겠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제 전달에 별 쓸모없을 것 같은 앗참, 너 말야, 자 자 자, 오모모, 어쩜 좋아 같은 말들이 감정 나눔에 가장 맛있는 양념일 줄이야. 컴퓨터는 자연스러워지기 위해 일부러 감탄사를 넣으려 하고, 자의식에 빠진 인간은 감탄사를 줄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2024년 오늘의 아이러니다. www.kaykimcounseling.com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