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

지난주에 A를 면회했다. A는 나의 의남매, 한인 무기수다. 그동안 지내던 오래된 교도소 건물이 셧다운 되면서 수천 명의 재소자들은 모두 여기저기 다른 지역으로 나뉘어 이감되었다. 가능하면 원하는 지역으로 보내준다는 방침 아래 모범수 A도 자기가 신청한 새로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누나랑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오고 싶었어요.” 태어나 자란 한국 땅에도, 드넓은 미국 땅에도 일가붙이 하나 없는 A는 나를 의지한다, 면회 신청을 하고 아침 일찍 서둘렀으나 도착하니 짧은 겨울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 바람이 차다.

코비드 기간에는 비디오 면회만 가능했는데 가족, 친지 신청자들의 경쟁이 심해서 온라인으로 예약시간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 폰까지 다 켜놓고 재빨리 클릭을 해도 서너 달에 한번이나 성공했을까.

드디어 얼굴 마주하는 면회의 날이다. 까다로운 복장 검사. 여성은 치마 금지, 신체굴곡 드러나게 붙는 옷, 레깅스 금지, 겹쳐 입기 금지, 글씨 적힌 티셔츠 금지, 금속 후크 달린 브래지어 금지. 머리끝부터 신발 속까지 검사를 마치고 오른쪽 왼쪽 팔뚝에 쾅 쾅 형광 스탬프가 찍히면 패스! 감시탑에서 자동으로 컨트롤하는 육중한 게이트들을 통과한다. 문 하나, 문 둘, 문 셋, 문 넷…. 눈앞에서 슬라이딩 철문이 스르르르 열리고 방금 통과한 문은 등 뒤에서 철컹! 소리 내며 잠긴다. 마지막 면회실의 출입문은 벽두께 만큼이나 두껍고 무겁다. 들어가니 안에는 먼저 온 가족 면회객들이 와글와글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라티노나 흑인들은 아이까지 데려와 오래 못 만난 아빠 목에 매달리며 논다. 한쪽 벽에는 벤딩 머신이 줄서있다. 수감자는 반드시 교도관을 향해 자리에 앉을 것. 벤딩 머신 주변에 가까이 가지 말 것. 음식을 사기 위해 가족들이 사용하는 지폐를 만지지 말 것.

가족들은 미리 마련한 1불짜리로 벤딩 머신을 이용한다. 1인당 한도는 70불. A는 저만치 그어진 선 밖에 서서, 머신의 투명 유리 안에 들어있는 일회용기 음식들을 보며 “누나! 그거요! 괜찮아요! 누나 꺼도 고르세요!” 말하는 대로 나는 1불 지폐를 계속 넣어가며 음식을 산다. 마이크로웨이브에 데워야 하는 햄버거, 조각 피자 같은 것들인데 낮 시간에 온 사람들이 대부분 소비하고, 남아있는 음식이라곤 거의가 쓸데없이 칼로리만 높은 정크 푸드 수준이다. “누나! 너무 맛있어요. 감사해요. 오늘은 런치도 안 먹고 기다렸어요.” 우리 집에 두고 온 따뜻한 음식들이 떠오른다. 그때 저쪽 구석 맨 밑바닥에 과일 접시 하나가 눈에 띈다. “A야! 여기 과일이 남아있다!” 종이 접시에 담긴 작은 포도송이. A가 포도접시를 받아들고 오래 들여다보더니 한 알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포도 먹어본지 이십년도 더 됐어요.”

나는 종종 A를 위해 아시안 음식을 보내준다. 지정된 재소자용품 업체에서 무게 제한, 부피 제한 아래 일 년에 4번 주문할 수 있다. 아시안 푸드는 인기가 높아서 한국라면은 빨리 오더하지 않으면 늘 품절이다. “라면을 어떻게 끓여먹니?” A가 설명한다. “비닐봉지에 라면을 부숴 넣어요. 샤워꼭지에서 받은 더운 물을 넣고 봉지 입구를 꼭 쥔 채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죠. 교도소 마당에 피어난 잡초 중에 유채를 만나면 뽑아다가 파프리카 가루를 뿌려 먹기도 하고요.” (‘프리즌 라면-철창 안의 조리법’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음)

그렇게 면회 시간은 휘리릭 빨리도 지나갔다. 이거 더 사올까? 아니에요 누나도 좀 드세요. 난 배불러. 저만 자꾸 먹이시네요. 너 잘 먹는 거 보는 게 즐거워. 누나, 와줘서 고마워요… 마음의 허기를 나누는데 ‘음식’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우리는 시멘트 바닥에 고정된 차가운 메탈 테이블 위에서 정크 푸드들을 서로 상대방 쪽으로 가까이 밀면서 마주보고 웃었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