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혐오’하는 재미

유펜 심리학 교수인 폴 로진은 바퀴벌레 실험으로 상식에 도전했다. 어느 날 참가자들은 무척이나 깔끔한 실험실로 초대된다. 깨끗한 흰색 커버가 덮인 테이블. 그 위에는 오렌지주스가 담긴 두 개의 유리병이 있다. 잠시 후 조교가 쟁반 위에 받쳐 들고 온 바퀴벌레를 한쪽의 유리병에 빠뜨린다. “이 바퀴벌레는 무균실에서 길러졌으며 철저히 멸균시킨 것입니다. 인체에 아무런 위험이 없어 절대로 안전합니다. 한 컵씩 쭈욱 들이켜세요.” 결과는 뻔한 것. 이날 바퀴벌레 주스를 마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퀴벌레는 더럽다는 인식 때문에 인간에게 지독한 혐오의 대상이다. 정말? 로진박사의 멸균 바퀴벌레는 안 더러운데?

로진 박사가 한번은 매력 넘치는 여성 학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맨해튼의 고급 식당, 캔들라잇 디너테이블로 안내되는 순간 여성은 로진박사의 상의 옆구리가 불룩 솟아나온 것을 보았다. 얼핏 눈에 들어온 것은 흔히 대장수술 환자들이 달고 다니는 배변주머니로 보이는 사이즈. 여성은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웠고 식사할 기분도 사라졌으나 무한한 인내심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의심이 사라진 것은 다음번의 만남, 로진박사가 말짱한 신사복 차림으로 나타나서 말했다. “지난번에 걸쳤던 다운재킷은 세탁기에 잘못 돌려서 털이 온통 배 쪽으로 뭉쳤지 뭡니까.” 로진박사가 그녀를 시험했는지, 정말 몰라서 입고 나왔었는지 증명할 길 없으나 아무튼 두 유명 학자는 ‘혐오’를 넘어 결혼으로 이어갔다는 에피소드다.

분노, 공포, 즐거움, 슬픔, 놀람, 혐오는 인간의 여섯 가지 기본 감정으로, 혐오는 우리 생활 곳곳에 있는데도 이전에는 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입을 헤벌리고 있는 모습은 어떤가. 과학적 묘사로는 ‘양쪽 입술이 벌어진 상태에서 확장된 혀가 입술 밖으로 돌출되며 윗입술은 후퇴, 아래턱이 밑으로 떨어진 상태’ 말이다. 여기서 끈적한 침이 주르르 흐른다면? 이런 모습을 보면 도망치고 싶은 욕구와 메스꺼움, 자신을 깨끗이 하고 싶은 충동이 유발될 것이다.

로진 박사팀은 이후로도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신선한 오렌지주스를 새 변기통에 담아내오기, 사용 후 철저하게 씻어낸 파리채로 휘휘 저은 수프 마시기, 여성 위생용품을 입술에 대기…. 도대체 혐오는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의 혐오감은 메스꺼움이나 구토로 표시된다. 메스꺼움은 먹기를 중단하라는 신체 신호이고 구토는 방금 먹은 것에 대한 실행 취소 버튼이다. 이번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자. 사랑스런 연인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사과향기, 잠시 후 남성은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연인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출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카락 하나가 두피를 벗어나 둘이 먹으려던 샐러드 위에 떨어지면?

학자들은 혐오감에서 인간의 진화를 설명한다. 만일 혐오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역겨운 것을 먹고 죽었을 것이다. 반면 너무 쉽게 혐오감을 느끼면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지 못하여 죽었을 것이다. 네오포비아(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와 네오필리아(새로운 것에 대한 사랑)가 적절하게 섞인, 그 중간지대에 서 있는 게 안전책이다. 혐오는 지나간 불쾌 경험에 대한 인식오류일 수 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혐오민감성척도를 통해 개개인의 성향을 측정한다. 맨발로 길을 걷다가 지렁이를 밟는다면, 공동화장실 변기에 몸의 일부가 닿는다면, 친구가 속옷을 일주일에 한번만 갈아입는다는 걸 알았다면… 등의 문항이다. 혐오의 출처는 어디인가? 상대인가? 아니면 내 머릿속인가? 대상을 무작정 혐오하기 전에, 한번쯤 내 기억의 프로그래밍 오류를 탓해볼 일이다.

<김 케이 상담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