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C는 행복하네

살아있는 오골계를 처음 본 것은 LA에서 한 시간 거리, 닥터 C네 랜치를 방문했을 때였다. 오골계는 살과 스킨과 뼈까지 죄다 까만색이다. 내가 본 건 뚝배기 안에서 음식이 된 오골계 말고, 살아서 피둥피둥 걸어 다니는 닭. 털까지 검은 색은 아니어서 재즈 가수가 덧입은 풍성한 털 코트처럼 이리저리 수북하게 뒤덮인 흰 깃털은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 유명한 흰 무대의상처럼 화려했다. 랜치에 사는 동물 가족들은 모두 자연 방목이라 내 다리 사이로 거리낌 없이 걸어 다닌다.

“선생님! 얘가 낳은 알은 무슨 색인가요?” 닥터 C가 안에 들어가 푸르스름한 달걀 하나를 꺼내왔다. “보통 닭들은 하루 이틀에 하나씩 낳는데, 이 아이는 1년에 50개 정도 낳지요.”

닥터 C는 은퇴 산부인과 의사로 내 아이들을 모두 건강하게 분만시켜주었다. 미국 통계는 도시별 차이가 크지만, 산부인과 의사 한 명 당 평균 일 년에 약 100명의 아기를 받는 것으로 되어있으니 우리 애들도 그 해, 닥터 C의 진료실에서 초음파로 사진 찍힌 백여 명 중 하나이다. 이제 닥터 C는 임산부 뱃속의 태아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자연분만을 유도하고, 난임 부부를 위해 실험실을 열고, 위험군 산모를 돌보는 대신, 끝도 안 보이게 넓은 랜치에서 오골계가 낳은 알을 부화시키고, 눈 맞은 산양끼리 만든 아기 산양을 받으며 행복하다.

나는 임신 기간 중 입덧이 얼마나 심했는지 얼굴만 옆으로 돌려도 우엑우엑. 산모는 자연히 몸무게가 는다는데 오히려 체중하강. 내전중인 비아프라 아사자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몰골로 그땐 아직 젊었던 닥터 C의 진료실에 실려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입덧 하다가 죽는 산모는 없죠?” 그러자 불안한 환자를 달래고도 남을 웃음으로 닥터 C가 말했다. “왜요...죽기도 하죠.” 가까스로 열 달을 채운 어느 선데이, 양수가 터지면서 급히 분만실로 달려온 닥터 C의 의상은 골프복장. 9홀도 못 채우고 골프채를 다시 챙겼을 의사에게 미안했다. 둘째 아이 출산도 또 양막 파수에 하필 새벽 2시. 분만실에 나타난 닥터 C의 머리는 ‘나 방금 자다 깼음’을 말하는 듯 부스스 한쪽으로 눌린 ‘베드 헤드’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까지 그분이 학창시절 내내 겪었을 경쟁과, 고된 수련과정 동안 시달린 수면부족과, 포기해야했던 수많은 휴가와 전문성이 없었더라면 나는 무사히 엄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진화생태학자들은 현재 수준과 같은 문명의 도움이 없을 경우, 인간 수명을 39세로 추정한다. 고려, 조선시대의 평균수명과 비교한 결과다. 수명은 물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의사들로부터 너무 많은 지원을 받았다. 여러 건수, 여러 부위의 수술, 온갖 예방주사, 병리검사, 재활치료, 사경을 헤매던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옮겨졌던 몇 차례의 아슬아슬한 병력…. 모든 과정에 그 분야를 전공하고 트레이닝 받은 의사들이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영화 ‘양철북’은 분만실 천정에 매달린 전구 불빛을, 자궁을 막 빠져나온 태아의 시각 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니 우리들의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병원에서 병원까지’일 것이다. 마지막 호흡으로 세상과 빠이! 할 때, 멀리 사는 가족 대신 곁을 지켜줄 사람이 의사일지도 모른다.

닥터 C의 유머 감각대로 그 댁 앞 장식으로 세운 두 마리 사자 석상은 어흥!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게슴츠레 뜬 눈에 낄낄 웃고 있는 모습이다. 5월의 랜치에는 대추, 매실, 포도, 체리, 사과....과실수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은퇴는 그동안 숨차게 달려온 시간을 안단테로 늦추며 세상을 껴안는 시간인 것을 닥터 C의 라이프를 통해 나도 미리 배워가고 있다.

<김 케이 상담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