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이 밉다
위장은 말이 없다. 배부른 걸 느끼는 부위는 당연히 뇌다. 주인이 음식을 자꾸 집어넣는다고 해서 위장이 “제발 그만!” 할 수는 없다. 배부른 느낌은 뇌가 담당한다. 포만감이란 ‘내장기관이 기계적으로 팽창했구만!’이라는 사실이 뇌에 전달되었을 때 생기는 느낌이다. 이 포만감이 우리 식욕을 조절한다. 좀 더 먹을까? 아니야, 정신 차리고 숟가락 놓자! 를 결정짓는다. 위장이 팽창한 걸 뇌는 어떻게 알았을까?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는 서울대 김성연 교수팀의 ‘포만감을 느끼는 신경세포 발견’ 논문을 공개했다(2020).
실험대상은 쥐. 실험쥐들에게 물이나 고체음식을 먹이면 척수에서 뇌로, 또는 뇌에서 척수로 신호가 전달되는 통로 일정부분이 활성화되더라는 것이다. 먹어서 소화기관이 부웅~ 늘어나면 포만감을 느끼는 그 지점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이어서 식사량과 수분섭취도 줄어든다. 옳거니! 그렇다면 내 브레인 속의 이 부분을 조절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나? 라는 기대는 좀 이르다. 왜냐하면 포만감이 음식 먹기 시작하는 일을 말리기는 하지만, 일단 시작한 먹기를 멈춰주지는 않기 때문.
다이어트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과제다. 18세 이상 한국여성 85%는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경험이 있다(한국갤럽, 2018). 배는 부르고 살 안찌는 음식은 뭐지? 토마토? 알긴 아는데 실천은 어렵다. 배고플 때 떠오르는 음식은 토마토가 아니라 빵, 떡, 짜장면 같이 칼로리 높은 메뉴들이다. 먹는 일은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9.11 테러 직후 미전역의 식료품점, 식당에서 소위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로 꼽히는 달고 기름진 음식의 판매가 25-40% 증가했다는 게 ‘경제 타임즈’의 보도다. 우울, 불안, 가족 갈등, 회사 스트레스, 자신의 신체이미지에 대한 불만 등 먹는 일에 영향을 끼치는 심리적 원인은 수없이 많다.
정신의학에서 ‘섭식장애’라고 부르는 여러 증상 중에 가장 흔한 ‘폭식장애’는 먹는 행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자기 신체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질수록 폭식이 증가한다. 짧은 시간 안에 폭풍흡입 한 다음 체중증가를 걱정한 나머지 곧바로 토하거나 설사유도제를 사용하는 ‘신경성 폭식증’도 있다. 밤에 혼자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 엄청 먹은 다음 토해내지만 몰래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중독’은 우울, 불안, 중독 등과 관련이 깊다. 주로 설탕, 소금, 빵, 지방, 카페인 등이 포함된 음식이 중독을 만드는데 가장 심리적 위험이 높은 증상이다.
반대로 ‘섭식 억제’는 한마디로 식욕을 미워한다. 식욕에 대항, 먹는 일을 극도로 제한하고 억제하는데 대부분 다이어트가 목적이다. 주로 완벽주의자들이거나 강박적 성향, 신체이미지 불만족, 낮은 자존감 등 만성적인 심리 특성을 보인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서 강박적으로 몰두하는 것은 ‘건강음식집착증’이라 부른다. 영양불균형에 심각한 체중저하가 생기기도 하고 자존감이나 정서상태까지 좌우된다.
밤이 되면 속이 출출하면서 뜨끈한 국물 한 대접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하루 먹은 양의 반 이상을 또 먹는다면 ‘야식증후군’으로 본다. 늦은 시간 야식을 먹고 나면 잠의 질도 안 좋아지고 비만도 걱정이 된다. 밤 아홉시, TV를 보다말고 “라면 곱빼기에 매운 김치, 계란 하나 풀고!”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대개는 그릇된 스트레스 반응일 수 있다. 먹는 일은 곧 심리 상태의 반영이다. ‘에잇! 잘 먹고 잘 살아라!’는 욕이 아니라 축복의 후렴구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