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이 열리는 메뉴 심리학
지난 주 어느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떠올려보자. 손님은 출출한 허기를 채우러 식당에 가겠지만 메뉴판을 나눠주는 주인의 시각은 다르다. 메뉴판이 손님 손으로 전달되는 순간 지갑을 열게 만드는 심리 전략이 시작된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가죽표지의 두꺼운 메뉴판, 간편 분식집은 한 장짜리 종이메뉴가 적격이다. 유럽, 미국 고급 요식업계에서 활동하는 메뉴 전문가들은 타겟으로 삼는 고객층을 분석하고 이들의 라이프스타일, 문화심리적 배경, 직업 특성을 연구한다. 요리와 영양, 미각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춘 것은 물론이다.
‘메뉴 엔지니어’ 또는 ‘메뉴 심리학자’ 대다수는 6디짓 이상의 고액소득자로, 맥도날드, 스타벅스 같은 체인업계의 메뉴 제작에도 심리적 전략을 세운다. 드링크 컵을 S, M, L 대신 톨, 그란데 등으로 표시하는 애매한 사이즈 이름 만들기, 콤보 메뉴 앞에 붙는 1, 2, 3…숫자 배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비즈니스 전체의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 찰스 스펜스 교수팀의 연구결과다.
메뉴판의 으뜸자리는 1시 방향. 오른쪽 윗자리 메뉴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간다. 여기는 종이신문의 탑뉴스가 올라앉는 명당자리이기도 하다. 다음은 11시 자리. 이 두 자리에 수익이 많은 음식을 배열한다. 그룹으로 나눌 땐 애피타이저, 메인 디시, 디저트 등으로 구획을 정하는데 7개 이상이면 손님들은 귀찮아서 안 읽는다. 수익이 낮은 메뉴는 눈길이 잘 안 가는 왼쪽 아래 칸에 둔다. 전문가들에게 ‘메뉴 시베리아’라 불리는 자리다.
뻑적지근한 코스요리, 메인 디시에는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어 열심히 읽어보면서 동시에 가격을 찾지만 쉽지는 않다. 이것도 전략이다. 가격은 대개 음식 이름 맨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숫자만 적는다. $ 표시가 들어있으면 손님들이 식욕보다는 돈을 떠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까닭이다. 큰 글씨로 $30 대신 달러 표시 없이 29.94로 적는 것도 덜 비싸 보이는 전략이다. 숫자를 없애고 아예 옆으로 기울어진 영문 손글씨로 넣으면 빨리 읽기 힘들어서 손님이 요리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메뉴판에 나열하는 것도 좋지만 자칫 길면 귀찮아진 손님들은 읽지 않고 웨이터를 불러 설명하게 한다. 요리 설명에는 단순한 이름 대신 감성적인 형용사를 붙이는 것이 수익을 3배 이상 올린다는 것이 일반 실험 결과이다. ‘씨푸드 파스타’보다는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이태리 스타일 파스타’에 손님들이 더 많이 지갑을 열고, ‘삼겹살’보다는 ‘할머니 손맛 쫄깃 삼겹살’이 매출에 지대한 공을 세운다. ‘수제’와 ‘핸드메이드’ 단어도 공신이다. 로봇 기계가 찍어내는 게 아닌 이상 음식이란 본래 손으로 만드는 거 아닌가? 그런데도 ‘수제 햄버거’나 ‘홈메이드 파이’(진짜 집에서 만들어 왔다고?)는 훨씬 판매고가 높다.
와인 메뉴도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건 아니다. 가장 비싼 와인과 가장 가격이 낮은 와인은 손님들이 살짝 피해간다는 게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따라서 가장 비싼 와인 바로 아래 2번째 높은 가격의 와인을 올려놓되, 가격을 조금 올려서 매겨도 손님들은 별로 비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장 값싼 와인은 남에게 짠돌이 인상을 남기기 싫은 심리 때문에 손님들은 별로 오더하지 않는다.
업계에서 일하는 감각심리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지갑이 더 열릴까를 고민하느라 메뉴판 제작에 3-4회의 실험을 거쳐 18개월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우울, 불안, 정신이상증세만 다루는 게 아니라 메뉴판 제작에도 참여하느라 오늘날 심리학은 바쁘다, 바뻐!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