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면 더하고 싶은 심리

소위 ‘지랄 총량의 법칙’은 한 인간이 일생 떨어야 할 ‘지랄’의 양이 사람마다 거의 비슷비슷하더라는, 교과서 밖 심리학 통설이다. “울 애들은 어찌나 착한지 사춘기를 안 해요. 눈 한번 올려 뜨는 법이 없다니깐!”하면서 안심하지 마시라. 10대에 못 춘 ‘난리 부르스’는 때로 40대 느지막이 이상한 짓거리로 나타날지 모른다. 나는 사춘기에 떨 분량을 딱 들어맞게 10대에 어찌나 떨었는지, 이후로는 자세를 납작 엎드려 행여 남의 눈에 띌세라 조신한 행적의 ‘내숭’으로 일관하는 편이다.

그땐 귀신에 홀렸나? 비교적 일찍 시작된 성장기 반항성은 내 심과 신을 온통 사로잡아 눈만 뜨면 닥치는 대로 치받으며 보냈다. 교복 대신 가발 쓰고 성인영화 보러가기는 일상이고, 학교 옥상에서 담배 피다가 교장실에 불려가기, 어른들 속 썩이려고 일부러 가출하기. 지금 생각하면 치기 어린 저항이었는데 그 모양새를 훗날 눈앞에 마주한 적이 있었으니…

세월이 흘러 심리학 박사과정 때 한번은 벨라지오 호텔 분수 쇼를 구경했는데 앗! 저것이 바로 그것일세! 거대한 구조물, 현란한 조명과 스피커 시스템 안에서 힘찬 물줄기는 솟구쳤다가 뒤집어졌다가 하늘을 찌르다가 나뒹굴다가, 예측할 수도 걷잡을 수도 없는 모양으로 시야를 압도했다. 이건 물론 굴지의 분수 컴퍼니 WET의 예술작품이지만, 사춘기 광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저랬을지 몰라, 하며 튀기는 물방울 속에서 씨익 웃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춘기 학생들에게서 나는 몸부림치는 반항성을 감지한다. 왜 우리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질까? 그 나이뿐 아니다. 연애와 이별과 질투와 집착에 빠진 젊은이들이 왜 하지 말라고 하는 일에 더 매달리게 되는 걸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애는 오히려 부모가 만들어준 게 아닌가?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청개구리 심리를 ‘반발이론’(Reactance)이라 부른다. 어떤 행동을 못하게 하면 더하고 싶어지는 심리, 누군가 내 선택을 제한하거나 앗아가려고 하면 더욱더 반항하게 되는, 불쾌한 동기부여 자극이다.

여자 친구, 남자 친구를 부모가 반대할수록 더 좋아지는 심리, 알아서 하려고 했는데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심리, 배우자가 두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면 더 외도하고 싶어지는 심리, 신발을 사러가서 내 치수가 없다고 하면 더 사고 싶어지는 심리, 15세 미만 시청금지라고 하면 더 보고 싶은 심리, 당뇨에 단 것을 금하면 더 먹고 싶은 심리, 교회 가는 주일날 더 골프 치고 싶은 심리.

이 현상은 반대로 한강다리에 새겨넣은 자살 방지 메시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전에는 투신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일 년에 10명 정도이던 것이 “밥은 먹었어?” “친구야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속상해하지마”라는 자살예방 메시지를 새겨넣은 이듬해 무려 95명으로 투신자 숫자가 급증한 것.(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지금은 모두 제거됨)

하버드의 유명 심리학자들은 어린이를 실험 대상으로 반발이론을 재검증했다. 과자 담긴 접시를 두 개로 나누어 하나는 손닿는 위치에 두고 또 하나는 약간 높은 벽 위에 두었다. 잠시 후 아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과자 대신 손이 잘 닿지 않는 벽 위의 과자를 집으려고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다.

혹시 요즘 누군가를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직선적인 “하지 마!” 대신 “더 해! 더 해!” 부추겨보는 청개구리 작전도 고려해볼 만하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