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심리학

20대에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은 자동차였다. 취직을 하자마자 쥐꼬리 월급에 회사 융자금을 보태 중고차를 샀다. 대한민국 고유모델 포니. 세계 최고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설계 작품으로 당시 한반도 찻길을 뒤덮었던 인기 모델이다. 운전석 문짝은 나중에 덧발랐는지 색깔 광택이 표 나게 달랐고 해치백 스타일의 트렁크는 한 번에 닫히는 법이 없이 헐거웠지만 세상을 얻은 듯 기뻤다. 나만의 공간! 안테나를 손으로 잡아 뽑자 오디오에서 팝송이 흘러나왔다. 작은 우주! 나는 사랑스런 ‘마이카’를 쓰다듬다 못해 담요를 가져다가 차 안에서 잤다. 아름다운 적막감이여!

그땐 면허시험장이 한남동에 있었는데 T 코스는 물론이려니와 S 코스를 들어갔다가 후진으로 나오기도 했고 언덕 중간에서 멈췄다가 요령껏 클러치 페달을 밟으며 다시 출발! 도 시켰다. 도로 사정은 가난했고 자동차 성능도 그럭저럭 이었으나 행복지수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이게 다 낡아빠진 옛날얘기다. 지금은 첨단 파킹시스템이 세상을 지배한다. 15인치 공간만 있으면 좁은 골목길도 시스템이 알아서 요리조리 피해가고,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만나면 알아서 후진한다. 파킹 메모리시스템은 운전자가 맨 처음 한번 주차했던 경로를 기억해서 그담부턴 차 혼자 알아서 주차. 2025년엔 운전자 없이 발레 파킹도 가능하다. 운전자가 호텔 입구에서 먼저 내린 다음 원격으로 자동차를 움직이고 차는 빈자리를 찾아 알아서 주차한다. 엊그제 좁은 공간에서 나만 내리고 차 밖에서 리모컨으로 빈 차를 움직여봤는데 광고에 나온 것처럼 ‘내 삶이 윤택해진 느낌’은 없고 불안감만 증폭됐었다.

자동차 생산 공정에는 엔지니어,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지만 심리학자의 기여도 역시 늘고 있다. 자동차 페인트업계 1위 회사인 액살타(Axalta) 발표에서 한국은 매년 흰색이 넘버원. 빨강이 좋긴 한데 남의 눈에 띈다는 걱정이 있고, 무난한 검정과 회색, 흰색 가운데 차가 커 보이는 효과를 주는 흰색 선호가 한인 소비자들의 심리라는 것. 색채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빨간 차 주인은 리스크 높은 증권투자자가 많았고, 큰 헤드 라잇에 돈을 쓰는 주인들은 자의식 강한 부류였다. 입으로는 ‘신선한 색’을 원한다지만 정작 팔린 차들은 은색과 흰색이 강세였다는 심리적 패턴도 독특하다.

눈에만 좋은 차가 아니고 이젠 귀에도 좋은 차라야 한다. 시동을 켤 때 나오는 배기음의 황홀감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도 있다. 소리 만족감이 마케팅에서 점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 페라리의 터보엔진, 마세라티의 V8은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중저음을 흉내 냈다는데 무식한 내 귀엔 아직도 소음일 뿐. BMW M4, 테너 C 키에 맞춘 재규어 F,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은 잠자던 사자가 갑자기 깨어나 포효하는 듯 “부아앙~~” 엔진 켜는 소리, 빠르고 시끄럽게 달리는 차를 내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흥분,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나오는 “끼이익!”으로 아드레날린이 치솟도록 심리학자들은 물리학자, 음향 엔지니어들과 협력하여 독특한 소리를 만든다.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소리 재미’가 없다. 차가 가까이와도 소리가 없어서 보행자 사고를 유발하기 쉽다. 전기차는 18마일 이하로 달릴 때 반드시 소리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심리학자들은 ‘보행자 경고가 되면서도 그럴싸한 소리’를 만드느라 머리를 싸맨다.

상담실이 있는 2층에서 내려다보면 파킹랏에 주차하거나 타고내리는 운전자들의 마음이 읽어진다. 비싼 차 주인이라고 즐거운 얼굴은 아니다. 첫 차 때의 행복감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요즘 나온 어떤 ‘첨단’도 부럽지 않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