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사람들

집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 내가 만든 시집, ‘내가 나에게’를 발견했다. 고등학교 문학 서클에서 쓴 시들이었나? 스무 살 생일을 자축한다며 외로운 자존심을 담아 딱 한권 인쇄했었다. 누렇게 바랜 페이지 조각들이 삭아서 떨어져나간 시집 안의 글자들. 다시 볼수록 장정은 초라하고 표현은 유치한데 내용은 겁 없이 진실하다. 그땐 정말 그랬었다. 십대에 경험한 쓰라린 연애와, 인생을 시작하는 20살 나이의 불안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단순 무지함이 담겨있다. 그것은 ‘청춘 우울기’의 큰 카타르시스였다.

시는 억압된 무의식, 해결되지 못한 경험과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게 한다. ‘시 쓰기’와 ‘시 읽기’의 치료적 효과를 밝혀낸 실험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지면서, 임상심리학에서는 ‘시 치료’(Poetry Therapy)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시치료협회(NAPT)에서는 정신/신경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시를 통해 무의식에 속해있던 자신의 이야기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열리고, 이를 통해 치료적 통찰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마리아 올리스(24)는 남편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던 우울증 환자다. 그녀는 시 치료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울의 늪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제목; 긴 여행; 당신도 언젠가 알게 될거야/ 당신이 내 귀에 쏟아 부은 조언들 정죄하던 그 말들이 나를 어떻게 파괴하였는지/ 나는 온몸을 떨었지 마루가 떨리고 집이 흔들렸어/ 내 귀에 맴돌던 말 “어서 네 인생을 고쳐! 고쳐! 고쳐! 넌 틀렸어!” 바람이 들끓고 어지럽던 그 밤을 나는 기억해/ 선택은 너의 것 생명을 구하기로 결심해봐/ 그것은 네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용기!>

강박증(OCD)은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끊임없이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자신의 논리나 감정이 만들어낸 스트레스에 대항하고자 하는 눈물겨운 방편이다. 텍사스 출신의 행위 시인이자 자전거여행가, 강박장애 환자이기도 한 닐 힐본(32)은 자신이 경험한 연애감정과 결별과정을 ‘OCD’라는 제목의 시로 표현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어. 항상 달고 다니는 틱증세도 사라지고 환상 증세도 멈추었지. OCD 환자에게 조용한 순간이란 결코 없어. 잠 잘 때도 머릿속엔 생각이 가득. 문을 잠갔던가? 맞어. 손을 씻었던가? 맞어. 문을 잠갔던가? 맞어. 손을 씻었던가? 맞어. 하지만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생각은 단 하나. 그녀의 입술이 머리핀처럼 끝이 말려 올라갔다는 것 뿐 (중략) 30초 동안 나는 그녀에게 6번이나 데이트 신청을 했어. 세 번째 신청에서 그녀는 예스를 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계속 같은 말을 했지. 우리의 첫 데이트. 나는 내 식사의 색깔을 정하느라 아주 오래 걸렸어. 바보 같은 말도 반복했지만 그녀는 그걸 사랑하고 받아주었어. 밤이 되자 그녀는 침대에 누워 내가 불을 켰다 껐다 하는 것을 바라보았지.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중략)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24번, 굿바이 키스를 16번이나 했어도 그녀는 나를 받아주고 사랑해주었어 (중략) 어느 날 그녀는 내가 그녀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고 말했지 ... (중략)..........>

조울증 환자 캐더린(27)의 시는 매일 약을 먹는 고통에 관해 말한다. <벌써 2년 째. 정량은 몇 밀리그램? 언제까지 먹느냐고 물었을 때 의사의 대답. 3-5년.... 그 긴 세월을 참아낼 수 있을까? 단 하루도 힘들어. 약 먹고 싶지 않아. 누군가 제발 나의 고통을 알아다오!>

쓰는 사람에게는 더 깊은 통찰을, 읽는 사람에게는 공감과 이해를 선물하는 심리 치유의 힘이 시 안에 있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