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거짓말

내가 아는 현역 임상심리학자 중 90세로 가장 연세가 높으신 닥터 로즈에게서 연락이 왔다. 심리학 서적을 몇 권 찾았으니 가져가라는 소식이었다. 할리웃 힐 언덕길에 위치한 그의 집은 출입구가 두 개로 나뉘어져, 한쪽은 주거용, 다른 한쪽은 오피스로 상담 환자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두꺼운 커튼을 내려 실내는 어두웠다. 낮은 조명 옆에 내담자가 편히 앉을 수 있는 깊고 푹신한 소파,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책 한권! 이상심리학(Abnormal Psychology)의 대가, 데이빗 로젠한 박사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89년판 원본 저서가 아닌가!

로젠한이 스탠포드 교수 시절 진행한 ‘가짜 환자 실험’은 멀쩡한 사람들을 정신병원에 보내게 되는 내용. 그가 모집한 평범한 참가자 8명은 정신병 환자 역할을 훈련 받은 다음, 각기 다른 정신과에 보내졌다. 호소 내용은 똑같았다. “얼마 전부터 귓가에 계속 커다란 굉음이 들려요. 뭔가 무너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귀를 막아도 나를 괴롭혀요.” 의사들은 환청이 들리는 정신증상이 있다고 판단, 이들을 입원시킨다. 7명은 조현병(정신분열증), 1명은 조울증(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입원기간은 약 1주일~2개월. 2010년 한국, 비슷한 실제 사건이 일어났다. 군입대를 피하기 위해 9명의 청년이 환청, 환각을 연기하여 조현병 진단을 얻어낸 것. 이들은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하여 조현병 환자를 연습, 정신과 의사들을 속였다가 시민제보로 들통이 났었다.

정신질환 진단이 엉터리란 말인가? 의문 제기로 유명해진 로젠한 실험 결과(논문 제목: 정신병원에서 제 정신으로 지내기)는 정신의학, 심리학, 과학철학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진단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환자가 진실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가짜로 증상을 호소해도 그 증상을 토대로 진단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로젠한 실험처럼 미리부터 작정한 가설을 증명하자는 게 아니라면 뭣 하러 가짜 병자 연기를 한담?

심리상담도 신뢰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대부분 내담자들이 ‘거짓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믿고 그들을 대하는데 때로는 병적 거짓말을 만나기도 한다. ‘공상 허언증’은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증상. 자기가 소유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면서 내적 보상을 받는 정신적 증후군이다.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면 망상장애에 가깝겠으나 재벌 총수 아무개 회장이 본래 자기 친아빠라며 주변의 관심과 부러움을 얻으려 한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스스로 환자 역할이 하고 싶은 경우. 관심을 끌기 위해 스스로 손목을 살짝 긋고 ‘가련 연기’를 한다. 내담자에게 숨겨진 목적(세컨드 게인; 2차적 이득)을 고려하는 것은 상담자가 하는 일반적 진단과정이다. 공황장애가 심하다고 호소하지만 알고 보면 회사에 병가를 낼 수 있도록 진단서를 써달라는 게 목적인 경우. 환자의 상태가 진단기준에 맞지 않거나 심리테스트에서 거짓이라고 판단되어(인위성 장애) 소견서 써주기를 거부했다가 분노한 내담자로부터 신체적 공격을 당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법정이나 직장에서 요구하는 마약복용검사에도 거짓말은 있다. 소변검사를 패스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아이의 소변을 받아와서 바꿔치기 시도를 하지만 너무 차가워진 샘플 소변의 온도 때문에 즉석에서 탄로! 내담자의 거짓말 심리,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흥미롭고 한편 눈물겹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