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 엄마, 헝겊 엄마
갓 태어난 새끼에게 어미가 사라지는 경험은 치명적이다. 최근 퍼듀대 심리연구팀은 생후 9일된 아기 쥐를 어미에게서 24시간 떼어놓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어미와 같이 산 다른 쥐들과는 달리 기억력 상실, 트라우마 반응, 두뇌 발달 기능저하 등이 나타났다는 것.
이 실험의 기원은 정신분석학자 보울비와 할로우가 진행했던, 저 유명한 모성 박탈 실험, ‘철사인형, 헝겊인형’에서 시작된다. 인간과 DNA가 95퍼센트나 같은 아프리카 붉은 원숭이가 실험 대상. 1956년, 위스컨신대 정신질환 실험실에 두 개의 분리된 방이 세워진다. 한쪽엔 철사로 만든 인형엄마에 젖병이 매달려있고 다른 쪽 방엔 젖병은 없으나 부드럽고 포근한 헝겊 인형엄마가 앉아있다. 태어나자마자 진짜 엄마에게서 분리된 아기 원숭이는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다가 곧바로 인형엄마에게 다가간다. 처음 한 두 번은 젖병이 달려있는 철사인형에게서 음식을 제공받지만 결국 새끼들은 철사에서 멀어져 헝겊엄마에게 안기고 온몸을 부비며 애착한다.
철사인형 방에 강제로 고립 수용된 새끼들은 스스로 철사엄마를 움켜쥐고 흔들어보다가 지쳐 포기하는데, 이후로 성장하는 동안 매우 심각하고 장기적인 우울증세를 보일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도 무관심하거나 조현병(정신분열증)과 흡사한 행동이상을 보였다. 한편, 먹을 것이 제공되지 않아도 헝겊 엄마에게 매달리던 새끼들에게서 엄마인형을 빼앗자 그들은 공포, 좌절을 드러냈고 끝없이 헝겊엄마를 찾아 헤맸다. 얼마 후 헝겊엄마를 되돌려주었을 때, 그들의 불안한 행동은 가라앉았으나 다시 빼앗기지 않으려는 집착의 행동을 보였다. (잔인한 동물학대 비판 때문에 현재는 악명 높은 심리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랑과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원숭이들은 커서 새끼를 낳아도 모성을 나타내지 않는다. 갓 태어난 자기 새끼를 돌보기는커녕 무시하거나 학대하고 새끼의 얼굴을 바닥에 짓누르기도 하며 손발을 물어뜯는다. 새끼의 머리를 자기 입에 처넣고 박살낸 경우도 있다. 연구결과를 통하여, 발달심리학자들은 인간에게서도 모성이 박탈될 경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젖떼기 전 어머니(또는 주 양육자)와 분리되거나 시설 등에 수용된 채 기계적으로 양육된 유아들에게서 식사 거부, 체중 감소, 수면 장애, 지능 저하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무감각하거나 무관심, 무감동, 분리불안 상태가 발견되더라는 설명이다.
심리학 클래스에서 반드시 한번쯤은 다루어지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년)’를 보면, 모성은 DNA에 들어있는가, 아니면 학습되는 것인가? 의심에 빠지게 된다. 세상엔 어-머-니- 세 글자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모성 박탈을 경험한 사람, 모성 갈증, 혹은 모성 혐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심리 상담실에서 만나는 문제에는 대부분 저 밑에 ’어머니‘가 들어있더라는 게 나의 경험적 고백이다. 잔인한 ’원숭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결과들이, 혹시라도 어릴 적 모성 결핍을 겪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근거로 쓰이지 않고,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자료로 사용되어지면 참 좋겠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