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맘 다해 밥을 씹다

어찌나 배가 아픈지 그날 아침 출근은커녕 직장에 결근을 알리는 전화기도 아령인가 싶게 무거웠다. 경상도 싸나이 직속상관은 경력 30년의 베테랑 언론인. 코끝에 걸친 안경 렌즈를 뚫고 쏘아진 안광은 지배를 철하다 못해 쫄개 직원들의 간담을 흔들었다.

“모 잘못 무긋나? 싸우나 가서 쫌 지지다가 언능 나온나!” 전화선을 타고 울린 상관의 명령을 받잡고 나는 기다시피 회사 근처 스파로 가서 쩔쩔 끓는 온돌 바닥에 엎드리는 순간 아뿔싸, 그 자리에서 기절!!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로 직진했는데 내 귓가에 어렴풋 젊은 의사의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 환자 미련하기두 하지. 맹장이 터졌네! 복막염으로 사방 퍼졌으니 빨리 수술 준비!”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하고 첫 출근 날, 부장은 내심 미안했는지 부원들에게 호기롭게 소리쳤다. “어이! 살아 왔는기가? 다들 마... 오늘 저녁 내가 쏠끼다!” 흠흠 이게 웬 떡! 간부급이나 드나들던, 당시 장안에 이름난 유명 고급 일식집으로 우루루 몰려간 그날 회식 끝자락에 나는 급성 장염으로 또다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약해진 속에 너무 급히 날것들을 섭취한 결과였다. 병실에 누워 마지막 위액 한 방울까지 다 청소를 당하는 동안 나는 인간의 내장기관과 먹거리와 저작활동과 생명에 이르기까지 두루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달고 짠 음식은 우리 뇌를 흥분시킨다. 입안 그득 음식을 씹지만 배고픔이나 배부름 감각은 뇌의 신호다. 배가 차면 뇌에서 식욕 억제 호르몬이 분비되기까지 15-2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빨리 먹는 사람은 이 시간도 되기 전에 와작와작 먹어버렸으니 과식, 폭식이 된다. 소화불량, 비만, 당뇨 위험이 높아진다. 밥을 15분 만에 먹는 사람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사람보다 위염에 걸릴 확률이 2배나 높다(2009, 서울종합검진 고병준 박사팀). 짜장면 한 그릇을 숨 안 쉬고 한 젓가락에 후루룩인 5분 식사 그룹은 20분 이상 닝기닝기 천천히 먹는 사람들에 비해 비만은 3배, 당뇨나 고지혈증은 2배 위험을 보인다(2008, 고려대병원 김동훈 교수팀). 어른만이 아니다. 허겁지겁 밥을 먹는 5살 미만 어린애들의 비만율은 같은 또래 평균치의 4.3배 높다(2016, 국민건강보험공단).

지난 달 입적하신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남부 보르도지방 한적한 시골마을에 만든 수행공동체 ‘플럼 빌리지’에서는 ‘지금 이 자리’(Here & Now)에 집중하며 천천히 먹는 수행법, ‘마인드풀 이팅‘ (Mindful Eating)을 실천한다. 사과를 먹을 땐 사과에 온전히 집중한다. 사과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 사과나무가 살았던 과수원을 그려본다. 사과가 식탁에 오기 전에 거쳤을 작은 씨앗 단계부터 사과나무를 길러낸 농부의 손길, 햇살과 토양과 맑은 공기를 떠올린다. 물을 마실 땐 물에 온 마음을 다 기울인다. 물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경로로 내 앞에 놓였을까? 그 길 안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밥 한 공기 앞에서는 밥풀 하나마다 낱낱이 그 안에 담겨진 노동과 땀을 그려본다. 밥 한 톨이 내 입에 오기까지 온 우주가 협력한 것이다. 천천히 씹고 삼킬 때 행복감이 솟아나며 소식하게 된다(먹기 명상; 2018, 틱낫한 지음).

폭식은 빨리, 많은 양을 먹으며 스스로 조절이 안 된다. 배가 불편해질 때까지 먹거나 그다지 배고픔이 없어도 계속 먹고 있다. 창피한 느낌 때문에 혼자 먹기 일쑤. 과식 후에는 죄책감, 자괴감, 혐오감을 느끼는데 이런 증상이 3개월 간 일주일에 1번 이상 반복된다면 정신질환으로 볼 수 있다. 밥 먹을 때는 온 맘을 다해 밥만 생각하자. 한 손엔 숟가락, 또 한손엔 스마트폰? 정신없이 입안에 우겨넣는 밥 때문에 어느 날 응급실에 실려 갈지도 모른다.

<김 케이 상담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