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훨훨

나는 걸을 수 있다. 운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발에 느낌이 없다. 3년 전, 격렬한 운동을 즐기다 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영영 발 감각을 잃었다. 의사들은 이리저리 찔러보고 눌러보면서 묻는다. 이래도 안 아파요? 지금 아이스팩 을 댔는데 못 느껴요? “모르옵니다!” 손상된 신경이 한 달에 1인치씩 자라나 발끝에 다다를 느려터지게 긴 시간은 상상만도 지루해서, 재활과정 동안 오르락내리락 온갖 감정파도를 겪었다. 화나고, 슬프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체념하고…. 그러다 만난 게 ‘맨발로 맨땅 밟기’다.

지구에 내 몸을 접지시키기, 영어로는 어싱(Earthing)인데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 몸에 흐르는 전류, 이 불필요한 전자파를 없애기 위해 몸을 땅에 접지시키자는 게 기본 컨셉이다. 번개 치는 날, 피뢰침을 통해 전기가 땅으로 흘러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 사람이 신발을 신기 시작하면서 땅과 발 사이에 합성고무, 플라스틱 등 방해물이 생겼다. 땅과 접지할 기회가 사라졌다. 어싱은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 몸을 회복시키는 운동이다. 콘크리트, 아스팔트는 안 된다. 타일이나 인조잔디도 안 된다. 건축물의 전기 그라운딩을 인체의 어싱 무브먼트로 처음 떠올린 사람은 클린트 오버라는 미국인 공학자. 이후 의학, 생명공학, 생태학 분야의 학자들이 잇달아 연구에 참여하면서 이론적 기초를 세워나가고 있다. 어싱으로 암을 극복했다, 고질병을 고쳤다, 불면증이 개선됐다 등, 성공적인 체험담은 주변에 얼마든지 많다.

어싱은 한국에서도 호응이 높아, 숲속 산책로의 흙을 다져, 맨발로 걷기에 알맞도록 꾸민 곳이 늘고 있다. 지역마다 동호클럽도 생겨났다. 전교생 맨발 걷기로 유명해진 대구 관천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의 어싱이 생활화되어있다. 2017년 감기 등 질병 결석 비율 30%였던 것이 어싱 이후 15%로 줄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하와이의 한 재활의학 클리닉은 물리치료가 끝난 환자를 바로 앞 해변으로 안내한다. 닥터 마나카는 어싱의 효과를 확신한다. “신발은 벗어서 진료실에 두고 가라고 하죠. 그리곤 모래 위를 걷게 합니다. 때론 파도가 밀려와 바닷물 속을 첨벙거립니다. 그러고 나면 환자들의 통증 레벨이 줄었다는 걸 알 수 있죠.”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나에게 ‘맨발, 맨땅’이 처음엔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가시나 유리조각에 찔리지 않을까? 아마 발바닥이 따가워서 한걸음도 못 걸을 걸?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는 어쩌고? 걱정에 싸인 내 손을 잡아끈 것은 미국인 직장동료였다. 존 뮈어, 애팔래치안 등 유명 트레일은 죄다 걸어보았다는 자연옹호주의자. 웬만한 등산길은 맨발로 다니고 평소에도 가능한 신발 없이 지낸다는 사나이. 어느 주말, 그를 따라 같은 부서 카운슬러 몇이 뉴포트 비치 근처 하이킹 트레일에 집합! 신발은 벗어 차에 두고 일행은 맨발로 흙길 위에 섰다. 햇볕을 못 쬐어 하얀 발, 숭숭 털이 난 발, 발톱이 웃기게 생긴 발, 고운 발, 퉁퉁한 발…. 까짓거 5분만 걸어보자! 아니면 먼저 돌아오지 뭐! 나 자신에게 중얼거리며 첫발을 내디뎠을 때, 차암 이상하기도 하지. 흙은 예상보다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발바닥이 닫는 곳마다 흙이 간질간질 포근하게 나를 받아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더 어스(Mother Earth)인가? ‘5분만’으로 시작한 맨발 걷기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고 일행은 모두 예정했던 루트를 끝까지 돌아왔다. 그 주간, 런치 룸에서 다시 만난 동료들의 체험담은 놀랍게도 거의 일치한다. 잠을 푹 잤다. 몸이 더워졌다. 상쾌하다. 두통이 사라졌다. 무릎 통증이 줄었다…… 나도 한마디 보탰다. “감각 없던 그 발이 밤새 팅글링 탱글링 하면서 종알거리는 것 같았어. 맨발로 훨훨 걸어보게 다음 주에 또 가자!”

<김 케이 상담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