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크리스마스
아홉 살 소년 M이 위탁아동으로 우리 집에 온 것은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소셜 워커는 이미 몇몇 위탁 가정에 연락을 취했으나 12월이라 자리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 말했다. 멀리 집 떠났던 자기 자녀들이 돌아오기도 하고 연말을 맞아 방문하는 가족 친지들로 위탁아동을 받을 자리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미세스 김, 댁에 오늘 밤, 오프닝이 있습니까?” M소년의 백그라운드에 관한 소셜 워커의 긴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OK라고 말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우선 M을 저희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밤 9시가 넘은 시각. 소셜 워커의 손을 잡고 우리 집에 도착한 M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또래보다 작은 키, 야윈 얼굴에는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얼룩져있었다. “아직 저녁 안 먹었겠구나. 배고프지?“ 급히 저녁을 차려주고 잠깐 일어났다. “금방 올게!” 아이가 쓸 방의 침대를 정리하러 갔다가 식탁으로 돌아와 보니 M은 음식을 그대로 남기고 자리에 앉은 채 지쳐 잠이 들어있었다.
M의 어머니는 아시안으로 스트립 댄서. M이 다섯 살 때 집을 나갔다. M의 아버지는 백인. 일정한 직업이 없다. M은 아버지를 따라 싸구려 모텔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는데 아홉 살이 되도록 학교에 가본 적이 없고 자기 이름은커녕 ABC조차 읽고 쓰지 못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툭하면 M을 때리면서 윽박질렀다. “울지 마! 너희 엄마에게 갖다 버릴거야. 네 엄마는 알코올중독에다가 정신이 나가버린 미친 여자거든. 밤이면 너 같은 아이를 잡아먹을걸.”
학령을 놓쳤지만 M을 우리 집 인근 공립학교에 입학시켜보려고 기관을 찾아다녔으나 위탁 부모에게는 그 같은 권한이 없어서 M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PBS 교육 TV를 보거나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며 지냈다. 학교에 다녀온 나의 아이들이 M에게 따스하고 훈훈한 크리스마스 스토리북을 찾아서 읽어주었는데 M은 그때까지 산타의 선물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M이 말했다. “진짜야. 나처럼 나쁜 애들한테는 산타가 오지 않는대. 어쩌다가 선물인줄 알고 열어보면 보따리 안에 차콜만 하나 가득 들어있대.” 나의 아이가 묻는다. “M! 너는 착해. 아마 자주 이사하니까 산타가 너희 집 주소를 잘 몰라서 그랬나?”
며칠 후, 소셜 워커에게서 연락이 왔다. “M의 부모에 대한 양육권/친권 재판이 열리는데 나와 함께 가보시겠어요?” 무엇이라고? 집 나갔다던 어머니가 나타났다는 건가? 아버지가 갱생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했나? 그들 가족 관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으나 일말의 희망이 싹텄다. M이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까?
캘리포니아 법정은 언제나 아이의 안전과 건강, 복지, 행복 등을 최우선 조건으로 심사한다. 12살이 넘었다면 본인이 누구와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도 있겠으나, M은 아직 어리다. 가정폭력이나 알코올 중독 전력이 있는 쪽에는 보내지 않을 수도 있는데…. 속으로 M 부모의 물리적, 법적 양육권이나 친권 자격 등을 머릿속으로 따져보지만 모두가 내 권한 밖의 일이다.
드디어 법정. 아버지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들었다. 함께 데리고 간 M의 면전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노우! 빌어먹을 친권은 지옥에나 보내슈! 얼굴에 동양 피가 섞인 녀석! 난 저런 아들 필요 없어!” 잔인한 겨울, M은 그날 아주 많이 울었다. (소셜 워커의 동의하에 인물과 배경 일부를 변경하였습니다.)
<김 케이 상담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