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인들에겐 한해 최고의 울렁거리는 타임이다. 새로 사귄 사이라면 기대 섞인 무드로 한걸음 발전해보는 시기. 헤어진 사이라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도 울어도 가슴 쓰린 계절. 팬데믹이 갈라놓은 ‘접촉금지’는 연말의 연인들을 아프게 한다.

밤 깊어 애인을 바래다주는 길, 집이 더 멀었으면 좋겠다. 헤어지기 싫다. 어느새 다 왔네. 연인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눈 깜빡 동안에도 난 네가 보고 싶어.” 이런 고백을 듣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지? 그게 바로 ‘라면 먹고 갈래?’…… 다음 장면은 상상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 인간의 연애 역사는 이렇게 흘러왔다.

“지금 배불러서 라면 못 먹어.” 눈치 빵점 사람이면 헤어지는 게 나을까?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1차적 ‘대상 언어’의 세상에서는 사람 관계도 재미가 없다. 한 차원 진전한 ‘메타언어’를 소통한다면 코로나 블루에 세상살이가 새록새록 알콩달콩 해질 수도 있다. 메타 커뮤니케이션은 벌어진 상황 안에서 상대방 말 속에 담긴 뜻을 추측하고 해석하고 흡수하는 재미가 있다.

부부싸움 끝, ‘당신 맘대로 해!’라는 말을 듣고 정말 내 맘대로 했다가는 싸움 제 2막이 열릴 뿐. 각자 의견을 묻는데 ‘전 상관없어요.’라는 대답 역시 메타 소통으로 이해하자. 어떤 부분에 필요 이상 민감하다는 내용이기 십상이다. 자신의 가치판단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존심 강한 사람들의 대표적 역설 표현이다.

코로나 시대에 밥은 먹고 다니는지? 한국인은 밥을 묻고 밥을 답한다. 그냥 헤어지기 섭섭할 때 자주 쓰는 말, “우리 밥 한번 먹자.” 거기 대고 “그래, 언제?” 물을 필요는 없다. 초점 아웃이다. “너 그러다간 국물도 없어!”라든지, “걘 내 밥이야.”도 속뜻이 다른 표현일 뿐. 투자 종목 내리막으로 돈 잃고 속 쓰려 몸져누운 친구에게 어쩌자고 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건지, 신세 진 동료에게 왜 꼭 찐하게 밥 한번 사겠다는 건지. 기숙사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왜 하필 평소에 밥은 제대로 먹느냐고 묻는지, 외출했다 귀가한 와이프가 종일 집에 누워 뒹굴뒹굴 잘 지낸 남편에게 걱정스레 밥은 어떻게 먹었냐고 묻는지.

속뜻 언어의 활용은 사회생활을 헤쳐 나가는 돛대가 된다. 취업 인터뷰 끝에 “너무 훌륭하셔서 이런 일이나 하실 분은 아니신 듯…” 점잖은 거절이다. “자네 무척 가정적이야.”라고 한다면 하라는 회사 일은 안하고 집안일이나 보러 다니느냐는 핀잔일지 모른다.

하지만 도무지 이런 표현에 적응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지능은 정상인데 일상생활에서 평균소통이 안 되니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증상이 심해 기능이 제대로 안될 경우,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신경발달장애에 속하는 사회적/실용적 의사소통장애(Social Pragmatic Communication Disorder)로 분류한다. 유머나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표현에 담긴 다중적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으니 기껏 한다는 대답이 상황에 엇갈린다. 자기 순서에 대화하기, 알아듣지 못했을 때 좀 더 쉬운 말로 바꾸어 말하기도 어렵다. 남에겐 흔히 어눌하게 들리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존재로 낙인이 찍힌다.

라면 먹고 갈래?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온 히트 대사다. 이어지는 “자고 갈래?”가 의미를 이어준다. 요즘 흔한 표현은 ‘넷플릭스 앤드 칠’(Netflix and Chill; 같이 잘까?)이다. 목석처럼 뻣뻣이 서서 “난 넷플릭스 안 봐.” 했다가는 모처럼 끓기 시작하는 주전자에 얼음 들이붓는 격이다. 도덕기준이 높으신 분이라면 ‘넷플릭스’도 ‘라면’도 못들은 척,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다. 언어가 곧 생각이다. 생각은 언어로 표현된다. 내년엔 코로나 없이 즐거운 소통을 하며 재미있게 살고 싶다.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