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관계의 즐거움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너도 날 좋아할까? 나만 널 좋아하는 거라면 억울해서 우짤꼬!

서로에 대한 호감도 차이를 말하는 ‘라이킹 갭’(Liking-Gap)에 자신이 없다면, 이젠 걱정 마시라. 상대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릴 좋아한다고 미국 심리과학지 최근호는 밝힌다.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 대화 상대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그 시간을 즐겼으며, 심지어 우리를 향한 호감을 표정이나 몸짓으로 보이기까지 했건만, 우리의 인식은 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라는 비관론으로 흘러간다는 것.

이 연구를 진행한 샌스트롬 박사는 “우리가 얼마나 자기방어적이고 자신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지,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에는 그들이 우리를 좋아한다고 가정하기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대학 연구실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 트럭 앞으로 자주 지나다녔는데 가게 여주인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하이!” 또는 가벼운 웃음을 교환했다. “그런 날엔 기분이 좋았어요. 우리가 서로를 기억한다는 것 때문에 유대감을 쌓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 즐거운 마음 상태가 그녀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인데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면…. 그녀의 다음 연구 주제가 정해진 것이다. 약한 유대(Week-Tie)도 강한 유대(Strong-Tie)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까? 강한 유대란 가족이나 친척, 절친 사이를 의미한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주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접촉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눈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시오.

연구 결과는 그 뒤로 수많은 학회지, 저널 등에 실렸는데 제목에는 한결같이 ‘놀라운’ 이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약한 관계가 주는 놀라운 힘’, ‘강한 유대보다 더 놀라운 영향력’, ‘우리가 간과했던 놀라운~~’ 응답자들은 약한 유대관계 안에서 ‘더 큰’ 행복감을 ‘더 자주’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꼽은 약한 유대 관계로는 동네 이웃, 세탁소 주인, 요가수련장 회원들, 동네 커피샵 바리스타, 교회 공동체 구성원 등등. 이들과 지나치며 나눈 가벼운 인사 한두 마디는 그날 하루 잔잔한 행복감이 솟아나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지역사회에 건강하게 소속된 느낌을 가지게 했다고 보고했다.

코로나 거리두기 시대에 강한 유대에만 관심을 두고 집중해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행복감 수준이 더 낮게 보고된다. “우린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매주 화상통화로 안부를 전해요.” 라고 말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젠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다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뿐. 색다른 에피소드가 생기지 않는 요즘, 너 잘 있니? 나 잘 있다 를 반복하다보면 새로운 화젯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약한 유대 관계 속에서 아직 이 세상이 종말을 맞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약한 유대 안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있고 정보와 자원도 있다. 이는 사회학자 그래노베터의 연구에서도 증명됐다. 그가 보스턴 출신 600명의 전문직 종사자와 기술자를 대상으로 ‘지금 직장을 어떻게 얻었나’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56%가 공채가 아닌 개인 연고로 성사되었으며, 자기를 소개한 사람과는 무려 84%가 간혹, 어쩌다 드물게 만나던 사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가볍게’ 생각해온 ‘가벼운 관계’가 일상에 파장을 일으킨다는 건 즐거운 발견이다. 약한 관계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