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생활

술병은 뒤집어도 술병인줄 알겠는데 사람 얼굴 사진을 거꾸로 놓으면 왜 누군지 모를까? 졸업 앨범을 거꾸로 보여주면 자기 얼굴도 긴가민가, 뇌가 가진 허점이다. 사람은 올바른 방향의 얼굴을 인식한다. 눈, 코, 입 같은 구성 재료를 가지고 얼굴지도를 그린 다음 비로소 오우! 아무개! 인식한다. 소요시간은 약 백분의 1초. 띵똥! 도어벨 모니터에 비친 남편 얼굴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는데 눈 깜빡 길이보다 더 걸린다면 의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어느덧 마스크 생활 반년. 마스크로 가린 얼굴은 “나 누구게?” 안 해도 알아볼 만하다. 종종 모른 척 지나가고 싶은 사람도 알아보겠을 뿐만 아니라, 미용실 못 간지 6개월 만에 영구 어업다~가 된 나를 상대방도 귀신같이 알아본다.

아랍문화권 출신의 직장동료가 마스크 대신 써보라며 준 니캅은 어떤가? 눈 아래로 마치 커튼처럼 얼굴 반을 가리게 만든 검은 천. 수퍼바이저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고 서류더미를 안긴다.

상대의 얼굴 반이 마스크로 가려졌어도 사람들은 감정을 파악한다. 입술에 미소를 담았는지 삐죽 내밀었는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짐작은 맞기나 한 것일까? 눈과 입은 얼굴에서 가장 많은 감정 정보를 담고 있지만 동서양 간에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동양인들은 주로 눈에서 감정을 읽고, 서양인들은 눈보다 입모양이 만드는 감정을 더 신뢰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연구결과다.

심리학이 즐겨 찾는 ‘표정 읽기 실험’에서 서양인들에게 분노와 혐오의 눈모양은 같고, 입을 더 많이 벌린 쪽을 혐오로 본다. 반대로 동양인들은 입술 모양 대신 눈을 더 크게 뜬 것을 분노라고 인식한다. 영어의 이모티콘은 눈 모양에 변화가 없고 입모양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반면, 한글의 이모티콘은 입은 그대로, 눈에만 하트모양이나 골뱅이로 감정을 전달한다는 KAIST 정재승 교수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 표정(Universal Emotional Language)은 행복, 슬픔, 분노, 공포, 놀람, 혐오 등 6가지. 43개의 안면근육 움직임이 만드는 8천여가지 표정을 기반으로 얼굴표정 해독시스템(FACS: Facial Action Coding System)을 만든 범죄 심리학자 에크먼 박사는 “공통된 표정 인식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부족들과도 감정교류가 가능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뇌공학자인 오하이오대 마티니즈 교수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35개국, 4백만 명의 얼굴 표정 자료를 확보한 연구에서 “표정만으로 진짜 감정을 절대 읽을 수 없다, 차라리 얼굴색의 변화에 주목하라”고 주장한다. 감정 변화에 따라 뇌가 방출한 펩타이드 호르몬이 혈류에 영향을 미치고, 이 물질 때문에 붉으락푸르락 안색이 변한다는 것. 그러니 마스크 쓴 얼굴 반쪽만 가지고 “앗쭈! 지금 날 째려보냐?” 해봤자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뉘시더라?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까지 포함, 과학 통계상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얼굴은 5천명. 얼굴 표정을 읽는 능력은 성장기를 거쳐 30대까지 향상, 50대가 되도록 유지된다. 노년기에 이르면 슬프게도 상대의 웃음, 행복표정을 제대로 알아볼 뿐, 분노나 우울 등의 부정적 감정은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폐스펙트럼 전문가인 캠브리지대 코헨박사는 재미난 ‘공감능력 테스트’(RMET)를 만들었다. 샘플사진에서 코 아래를 가린 다양한 표정의 두 눈을 보여주고 감정을 추측하게 하는데,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필요를 공감하며 그것에 관심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도구다. 그러나 잠깐! 예외는 있다. 마스크 쓴 사람의 마음을 몰라서 공감 못 하는게 아니라 하필 애인 사이 권태기, 애초부터 공감할 마음이 없었다면 어쩌나.

아무튼 이제 그만 갑갑한 마스크 벗어버리고 맨얼굴끼리 부비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