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호르몬

식당에서 밥 먹어본지 오래다. LA 카운티도 식당 안에서 다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러 가지 제한을 둔 가이드라인이 발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서너 달 전까지 누렸던 지글지글 왁자지껄, 이모! 여기 두꺼비 한 마리! 분위기로 돌아가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사람들은 집에서 혼자 끼니를 때우거나 그마저 설거지 예방, 한 접시 메뉴를 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직장에 나가도 런치 메뉴 사다리 타기나 부원들끼리 쫄개 심부름 시켜먹기의 즐거움은 사라졌다. 유리 가림막 안에 들어가 혼자 먹는 밥은 고독한가, 자유한가, 평화한가?

도대체 인간은 왜 함께 모여 밥 먹기를 좋아할까? 원시 부족들도 사냥에서 얻은 멧돼지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돌아오면 불을 지피고 멧돼지가 연기에 그을리는 동안 사냥의 무용담을 나누며 다 같이 나눠먹을 시간을 기다렸다. “고독은 내 친구!” 내뱉으며 돌아앉아 혼자 먹는 부족원은 없다. 동물이란 본시 그런가? 아니다. 사자는 혼자 먹는다. 희생제물의 살을 뜯는 동안 다른 녀석들은 왕의 식사가 끝나기를 멀찍이서 침 흘리며 기다려야 한다. 베스트셀러, ‘요리 본능’(Catching Fire)을 쓴 동물 진화학자 랭엄 박사는 탄자니아에서 침팬지와 함께 했던 연구기간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영장류 포함, 다른 동물은 어미와 새끼 관계 외에 성숙한 개체 사이에는 먹이를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BBC는 반론을 내걸었다. 침팬지, 늑대들은 사냥해온 먹이를 자기네 무리들끼리 나눠먹는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확인시킨다. 육식동물이라도 먹이사슬에 걸려든 약한 짐승의 고기는 대장이 어느 정도 자신의 양을 확보한 뒤, 사냥 팀워크에 참여한 패거리들과 둘러앉아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이후, 영국왕실 과학재단은 여럿이 함께 식사하는 침팬지는 혼밥 때보다 사랑 호르몬인 옥시토신 수치가 상승했다는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함께 하는 식사는 다량의 옥시토신 방출로 평소 친분이 없던 사람들 사이라도 유대와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한국민 영양건강조사 자료에 따르면 혼자 아침을 먹는 청소년들은 과일, 야채, 우유 섭취가 평균 이하, 자주 혼자 밥 먹는 중년 남성은 지방 과다, 복부 비만, 혈압 상승, 대사증후군 비율이 높았다. 또한 아동들은 자존감 정도가 낮고, 성인들도 혼밥 횟수가 늘수록 우울증 정도가 심각해졌다고 보고한다. 미국 청소년들은 평균 일주일에 4시간을 부모와 함께 식사, 3시간은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부모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길수록 학교생활 적응도가 높았고 반항, 분노 표출 정도는 낮았으며 우울증 사례도 감소한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다.

황지우 시인은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거룩한 식사’ 중에서)라고 썼다.

남이 봤을 땐 어떨까? 2019년 한국영양학회가 실시한 ‘혼밥 태도 연구’는 ‘외로워 보인다’(37.1%), ‘자유로워 보인다’(30.0%), ‘바빠 보인다’(20.1%)의 순으로 나타났다.

혼자 밥 먹으면 어때서? 밥상 위에 몇 점 안 남은 장조림도 다 내꺼, 된장찌개 뚝배기에 밥풀 묻은 숟가락을 들락거린들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좋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코로나 격리시대에 다 같이 둘러앉아 나누는 밥상이 그립다. 동물행동학자들은 밥상 나누기의 행복을 옥시토신 호르몬으로 설명한다. 기업대출용 PPP 론도 아니고, 실업수당 EDD 체크도 아니고, 숟가락 부딪히며 나누는 사랑 호르몬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



<케이 김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