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와 얼큰 라면
후룩후룩 찹찹 라면 광고는 왜 꼭 뱃속 출출한 밤에 나오나? 유혹이다. 보고 있자면 매콤 뜨끈 라면발이 막 내 입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코로나, 실업률, 렌트비 같은 단어를 반복 듣는 것만도 불안이고 스트레스다. 걱정거리로 몸과 맘이 지쳐갈 때, 밥 대신 라면 끓이기. “난 매운 맛으로!” 마켓 진열대에도 매운 맛이 더 인기다. 안 그래도 매운데 고춧가루 범벅 깍두기까지 얹어먹는 건 뭐지? 얼큰 화끈 매운 걸 먹고 나면 울적했던 기분이 좀 풀린다는 게 사실일까?
뉴멕시코대학 부설기관인 ‘고추 연구소’의 배니스터 소장은 학계의 고추 관련 오랜 연구 결과를 확신한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이미 진통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근육통이나 외상으로 인한 통증완화 패치에도 필수 성분이죠” 한마디로 ‘고추 만세!’다.
그렇다면 몸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것만큼 우울이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도 덜어줄 수 있을까?
세계가 인정한 매운 맛의 강자, 한국은 관련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대와 생물실험학회는 2013년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쥐의 입 안에 ‘약간 매운 맛’을 계속 주입했더니 뇌에서 행복감이나 스트레스를 느끼는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불안 장애가 있을 때 해오던 행동들이 줄어들더라는 것.
쓰고 달고 시고 짜고 하는 것은 혀에 널린 1만개 이상의 맛봉오리가 느끼는 맛이 분명한데, 맵다는 건 통각일 뿐, 미각은 아니라는 게 우리 모두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배워온 상식이 아닌가. 그래서 매운 걸 피부에 대는 실험이 아니라 직접 먹여보는 실험의 의미는 크다.
미국 과학자들도 비슷한 실험으로 매운 맛의 심리 안정 효과를 밝혀냈다. 쥐를 수영장에 풍덩 빠뜨린 뒤 얼마 만에 허우적거리기를 포기하는가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투명유리로 만든 둥근 수족관에 미지근한 물을 채우고 쥐를 넣으면 처음에는 쥐가 유리원통 밖으로 나가려고 계속 애를 쓰지만, 결국엔 포기하고 부동자세(Immobility)를 취한다. 이 같은 행동 좌절 양상(Behavioral Despair)을 보일 때까지의 시간을 재는 것이다.
결론은, 매운 음식을 먹은 다음엔 안 먹었을 때에 비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훨씬 더 오래 수영장에서 버티더라는 설명이다. 매운 맛 대신 단맛의 효과 측정에서도 같은 실험으로 사람들이 울적할 때 초컬릿 같은 단 음식이 많이 당기는 이유를 설명해냈었다. 참고로, 이 같은 ‘강제 수영 실험’(FST; Forced Swim Test)은 빗발치는 동물학대 논란으로 우울증 약품 개발에 힘써온 화이자 등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코로나 재난! 스트레스 레벨이 치솟으면서 한식당에는 매운 음식이 인기라고 한다. 매운 닭도 모자라 불닭, 기절짬뽕, 핵폭탄면, 쓰리고 돈까스, 불이야! 낙지볶음, 얼얼김밥, 눈물콧물 떡볶이 등등. 매운 맛은 우리 뇌에 천연 진통제 엔돌핀 분비를 촉진시킨다.
최근 한 설문조사는 슬프고 화나고 우울할 때 사람들이 주로 찾는 음식 순위를 발표했다. 남자들은 술(25.8%), 매운 음식(20.2%), 단 음료(10.1%), 여자들은 매운 음식(43.7%), 초콜릿(15.1%), 술(11.9%)을 꼽았다. 청양고추, 와사비, 할라뻬뇨, 카레… 매운 음식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나아진다. 캡사이신을 쥐의 뇌에 직접 주사한 연구에서도 도파민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서 파킨슨병에 걸린 쥐의 운동능력을 회복시키는 결과를 보였다.
코로나 사태를 버텨낸 오늘 또 하루, 귀퉁이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매운 라면을 끓여보자. 단, 찬밥 말기는 금물. 다음 날 아침, 밀려든 후회로 또 다른 스트레스를 올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