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반응
걱정이 팔자인 사람들은 걱정할 때가 가장 편하다. 불안한 사람한테 불안하지 말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소용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스크를 계속 쓸까 말까? 우리 아이 학교에 보낼까 말까? 세상이 불안하다.
인기 TV 시리즈 ‘스타트랙’ 작가이자 물리학박사이기도 한 믈로디노프의 어머니도 걱정이 많았던 사람 중 하나다. 대학시절 아들은 어머니께 매주일 저녁 8시에 안부전화를 드리곤 했다. 한번은 친구들과 놀다가 깜빡 시간을 놓쳤다. 9시가 되도록 전화가 오지 않자 어머니는 룸메이트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 아들에게 사고가 난 걸 숨기고 있니?” 밤 10시가 되자 마침내 아들이 죽었을 거라는 불안 공포에 휩싸였다.
이렇게 극심한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는 어린 시절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사건들이 시작된다. 건강하던 모친의 갑작스런 죽음, 나치에게 끌려가던 아버지의 뒷모습, 본인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살아남아야 했던 경험 등. 불안은 트라우마에서 기인하기도 하고, 두뇌의 세로토닌 재흡수라는 생리적 문제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환경 요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 겪고 있는 팬데믹 역시 공포이며 위협이다.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걱정, 근심,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겪는 게 바로 불안장애이다. 불안한 느낌이 지나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거나 다양한 신체 증상까지 느낀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걱정이나 불안 대상이 건강, 경제적인 문제, 실직 등 구체적인 경우도 있지만, 웬일인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근거 없이 막연한 불안도 있다.
걱정하느라고 항상 긴장한 상태에 있어서 한군데 집중이 안 되면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다.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는 환자의 25% 정도가 불안장애를 경험하며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더 많다.
불안장애의 3대 증상 중 하나가 걱정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갔다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지 않을까? 온갖 걱정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걱정 때문에 몸이 긴장되고 근육이 뻣뻣해질 정도라면 심각하다. 신체증상을 먼저 느끼는 경우도 흔하다. 두통, 가슴 통증, 호흡곤란을 겪는데도 건강검진에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불안장애를 의심하게 된다.
근거 있는 불안은 인간이 생존하는 힘이다.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걷지 않는 것은 불안이 감지한 위기대처이다. 불안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주변에서 ‘걱정이 팔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자가 진단을 해볼 수도 있다. 임상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범불안장애(GAD) 평가 도구는 10여 가지가 넘는데 대부분 걱정 반응을 측정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봐 미리 걱정을 하면, 마치 그 일의 무거운 느낌이 덜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부정적인 일이 닥칠 수도 있음을 예측하고 있다는 안도감도 있다. 이럴 때 걱정은 오히려 긍정적일까? 잠깐은 그렇다. 하지만 오래 되면 걱정을 지속하게 만드는 신념으로 작용한다.
걱정이 팔자인 사람은 걱정이 자기 안에서 지금 무슨 일을 벌이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이 꼬일 때 몰려오는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에 섞인 불쾌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 사람은 걱정을 한다.
어려운 문제에 계속 꽂히다보면 그 문제꺼리의 주의를 분산시켜 보려고 대신 다른 일들을 떠올리며 걱정을 한다. 걱정 속으로 도망치기,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의 회피 전략이다. 인간은 참 깨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