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Q의 하루

내 동생 Q는 무기수다. 우리는 10년 전 편지 교환을 통해 의남매가 되었다.

Q는 미국에 온 이듬해인 17살에 백인 갱들에게 칼을 맞았다. 도시의 더러운 뒷골목, 쓰레기처럼 구겨져 의식을 잃었다가 3일 만에 겨우 목숨을 건졌을 때 복수를 결심했다.

이어진 피의 사건들! 그해 처음 교도소에 들어가 10년을 살았다. 세상에 나왔지만 찾아갈 집도, 맞아줄 가족도 없었다. 얼마 안가 우연히 말려든 싸움으로 캘리포니아 3진법에 따라 또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Q의 형기는 200년이다. 이제 20년이 지났다. Q는 인생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살아왔다. 편견 심했던 70년대, 한국에서 혼혈인으로 태어난 처음 16년의 시간 역시 그에게는 햇빛 찬란한 시절이 아니었건만, 그래도 종종 그때를 떠올리며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혼혈인은 집안의 수치였지요. 친척 어른들이 눈에 띄면 창피하다고 벽장 속에서 못 나오게 했어요.” 어두운 벽장 구석에서 울다 잠든 Q에게 몰래 찾아와 가슴에 꼬옥 품어주던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미국에 온 뒤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Q는 삶에게 거칠게 대들었다. 온갖 말썽으로, 독방에 갇히기도 여러 번 하였다.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피를 철철 흘려봤다. 속은 풀리지 않았다. 손발에 수갑이 채이고, 입에 재갈이 물리고, 이리 부서지고 저리 무너지며 시간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Q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가 홀로 견딘 초침과 분침과 시침의 길이를 나는 설명하지 못한다. 크로노스! 카이로스! 시간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내가 누려온 사회적 혜택 및 타협의 비겁함을 얼버무리지 못한다.

그는 모범수다. 감시체계 시큐리티 레벨 4에서 약간의 자유가 주어지는 레벨 2 시설로 이송되었다. 얼마 전에는 면회실에서 기독교식 세례도 받았다. 목사님이 얇은 종이접시에 물을 받아 그의 머리에 부을 때, 그는 입속으로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암송했다.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고린도후서 5장 중에서)

Q는 시설 내 화장실을 청소한다. 시간 당 13센트를 받는다. 이렇게 모아진 한 달 17달러는 Q에게 요긴하다. 이 돈으로 거동이 불편한 75세 영국노인 수감자에게 그가 좋아하는 치즈 한 덩이를 사준다.

“이 노인이 젊어서 잠시 군복무를 했는데 얼마 전 영국 정부에서 그의 앞으로 100달러 체크가 날아왔어요. 20대에 미처 수령해가지 못한 돈이라고 써있어요. 체크 주인을 찾는데 수십년이 걸린 거죠.”

그날 노인은 Q에게 20달러를 떼어주었다.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Q에게 노인은 주먹을 흔들며 정겹게 소리쳤다.

“야! 이 망할 놈의 아시안 친구야! 누구에게 뭔가 줄 수 있다는 즐거움을 내게서 빼앗아가지 마! 제발 받으라구!”

미국 내 재소자는 2018년 기준 220만명. 숫자를 좁혀보면 인구 1만명 당 70명이 프리즌에 산다. 남성의 경우 흑인 37%, 백인 32%, 히스패닉 22%, 아시안을 비롯한 기타가 9%이다.(미 법무부 자료) 인종끼리 살벌하게 구역을 가르는 철창 안의 생존 방식에서, 살아내기 힘든 9% 안에 Q가 들어있다.

세상 모두가 닥치는 대로 ‘원수’였던 Q는 어느 날 ‘원수’와 화해했다. “지난주에 수도가 고장 났어요. 물 안 나오는 감방을 상상할 수 있어요? 대부분, 누구라도 걸리기만 했단 봐라! 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죠.” 한층 더러워진 화장실을 치우며 Q가 아랑곳없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자 사방에서 욕지거리 고함이 들려왔다. “셧 더 fxxx 업!”

Q가 웃으며 그들에게 대꾸했다. “그래도 마실 물은 주니 너어무 감사하지 않냐?”

편지 안에서 그는 말했다. “누나, 나 그날 맞아죽을 뻔했어요. 근데 두렵지가 않았어요. 웃다가 가는데, 세상 최고 행복 아닌가요?”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