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게 하옵시고…

1번 중국요리, 2번 피자, 3번 코케인.

모두 전화 한 통화로 배달 가능인데 이 중에 어떤 게 제일 빨리 올까? 정답은 3번이다. 문 밖에서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잽싸다. 그것도 고객이 원하는 종류 별로, 품질 별로, 가격대에 맞추어 눈앞에 즉각 대령이다.

고급 동네라면 ‘피시 스케일!’(고품질 코케인을 뜻하는 속어) 한 마디에 최고 질 좋은 물건이 배달된다. 중간상들은 종종 마진을 높이기 위해 싸구려 베이킹 소다를 섞어 양을 늘리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품질을 어찌 아냐고? 새끼손가락 끝에 가루를 살짝 찍어서 잇몸에 문질러 보면 척!이다. 진짜배기는 그 자리에서 입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을 준다.

값비싼 코케인이든, 값싼 화학조제 메스이든, 사용자는 거리거리에 넘친다. 국경수비대와 마약단속반이 탐지견까지 동원하여 어렵게 한 명의 운반책을 검거하는 동안, 다른 아홉 명이 국경을 넘는다는 게 마약통제국의 공식 집계. 공급이 수요를 못 당할 지경이다.

고급 사교클럽이든, 스키드 로우의 홈리스이든 판매상은 한눈에 사용자를 알아본다. 댄스파티가 열리는 장소에 잠입한 판매상은 흐느적거리는 춤꾼들 사이를 누비며 중얼거린다. “파티, 파티, 파티!” 성적 흥분을 높이는 몰리(MDMA) 엑스터시나 LSD를 판다는 암호이다. 악수를 하는 척, 가까운 친구 사이인 양 허그를 나누는 눈 깜빡 짧은 동작 사이에 돈과 물건이 교환된다.

중독 치료 전문가들은 10대를 ‘호기심 머신’이라 부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아직 해보지 않은 첫 경험을 향한 모험심, 동갑내기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튀어보고 싶은 영글지 못한 자존심, 여기에 성냥불만 그어주면 순간 폭발이다.

최근 부모에 이끌려 상담실을 찾은 A는 11학년 여학생이다. “우리 반 애들 중에 아직도 안 해본 괴물은 2명밖에 없을걸요. 너드(공부벌레)는 밥맛없어요! 첨엔 나도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스피드(메스암페타민의 속어) 없인 못 살아요.”

A의 부모는 딸의 학교 성적이 지난 1년 사이에 미끄럼 타듯 주루룩 내려갔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상담자에게 털어놓은 A의 진짜 문제는 마약 사용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 남자친구와 직접 메스를 만들어보는데 성공한 뒤로는, 친구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불법마약 제조-사용-판매, 3종 종합선물세트. 중범죄다.

도대체 누가 맨 첨에 이런 약물을 발명했을까? 뿔 달린 악당?

역사적으로 메스암페타민(일명 히로뽕) 같은 제조 약물이 처음 만들어지는 곳은 대부분 의학, 약학, 화학 등 전문 실험실. 그야 물론 처음부터 마약을 목표한 게 아니라 연구과정 중 의외의 효과를 가져 오는 성분의 조합을 발견해내는 경우다. 메스암페타민은 19세기 일본 도쿄대 의과대학 교수가 천식 약재인 마황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다가 처음 발견했다. 반세기가 지나 대일본제약이 ‘필로폰(히로뽕)’이란 상품명으로 판매를 시작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전쟁 중에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졸음을 방지하는 특효약으로 둔갑했는데 에페드린 성분의 교감신경 흥분 효능 때문이다.

요즘 ‘호기심 머신’들은 인터넷에 넘치는 제조법 영상을 통해 ‘거라지 실험실’을 차려놓고, 감기약에서 에페드린 성분만 뽑아내는 방법으로 메스 제조에 열을 올린다. ‘인생에서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지만, 어떤 종류의 호기심인지는 운명적 선택이다.

A의 자조 섞인 한마디. “인생이 어떻게 망쳐지는지 나도 알아요. 어렸을 때 주기도문을 배웠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지만 이젠 바뀐걸요. 오늘 밤에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하옵시고… 호호호”

이제 열여섯 살이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