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가짜뉴스에 속을까?

“세상을 잘못 타고 태어난 거지. 조선시대만 됐어도 울 남편, 영의정은 따논 당상인 인물인데.” 크크크 세상이 웃어도 할 수 없다. 본인은 정말 그리 믿고 있다는 게 문제다.

내 거짓말에 내가 속을 수 있을까? 그렇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이 함정을 피해가긴 어렵다. 두뇌는 가짜를 판단하지 못하고 언어로 기억한다. 머릿속 기억장치는 입력 자료를 정확히 호출해내는 대신, 얼기설기 기억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드라마작가에 가깝다. 그 드라마가 대개는 자기 좋을 대로, 평소 신념대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는게 고민이다.

뇌는 자기가 아는 건 믿을만한 출처에서 왔다고 스스로 믿는다. 강한 믿음의 소유자는 오히려 반대 정보들을 잘 기억한다. 반대 견해를 반박하려는 동기 때문이다. 믿음이 반복되면 거짓 정보를 교정하기 어렵다.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도록 설계된다. 가짜로 밝혀진 뒤에도 독자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굳어진 자기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더 찾게 되고,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보는 피하고 싶어진다. 심리학이 말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누구나 인지적 편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의 기대나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더 무게를 두고, 기존의 신념과 충돌하면 아무리 객관적인 증거라도 겉으로, 혹은 속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하버드 출신의 사기 전문조사관 파멜라 마이어는 단언한다. “어느 순간 누군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그건 당신이 거짓말 당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거짓말에 대한 최고의 진실은 거짓말이 상호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짜 뉴스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짜 뉴스 만드는 앱은 샘플로 제공된 기사체에 아무나 주인공 이름만 바꾸고 클릭하면 곧이어 줄줄줄 거짓 기사가 작성된다. 여기저기 가짜 뉴스 만드는 법 관련 어플이 거짓말이라는 ‘원초적 본능’ 소유자들을 유혹한다. 이런 걸 만드는 이유는 ‘재미로’가 1위, ‘주목받고 싶어서’가 2위, ‘상상을 현실로 바꾸고 싶어서’가 3위.

이제는 뉴스작성자의 경력, 전문성, 지적 양심 같은 것으로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기존의 믿음을 재확인해 주는 사람을 믿는다. 자기 생각이 잘못된 걸 깨닫고 바꾸기보다, 그 생각이 옳음을 확인받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가짜뉴스를 가리기 위해 펜실베니아 대학이 만든 비영리 웹사이트 ‘팩트 체크.org’는 한국 주류 언론들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친구관계 기반 네트웍인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의 가짜 뉴스는 거짓말을 확인할 도리도 없이 반복 전달된다. 대개는 가짜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일부는 ‘설마 다 이유가 있으니까 포스팅이 올라왔겠지’ 라고 믿는다. 안 속고 싶다면 적어도 뉴스 출처가 어딘지는 찾아볼 것. 그리고 이 컨텐츠가 실려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따질 것.

2년 전, 설악산을 관광하던 미국인 역도선수 10명이 흔들바위를 굴려 떨어뜨렸다는 가짜뉴스가 삽시간에 퍼졌다. 기사의 기본 틀인 육하원칙에는 그럴싸하게 들어맞는 글이었지만, 오히려 인터넷 유머스러운 이 거짓말로 설악산 관리사무소는 관광객들의 빗발치는 전화문의에 아직까지 시달리고 있다.

내 취향에 맞는 기사와 광고만 선별 배달되는 알고리즘은 정말 매력적이다. 한 번 맛을 보면 끊기가 힘들다. ‘미디어 문맹자’(Media Literacy)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여기에 있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