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는 침대가 없다

A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상담실 문을 노크했다. A의 두 눈은 붉게 충혈 돼있었고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은 부스스했다. 말하는 동안 눈 맞춤을 피하고 상담자의 뒤편 흰 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새벽까지 도통 잠이 오질 않습니다. 서너시 넘어서 억지로 잠이 들었나 하면 곧바로 눈이 떠지는데 시계를 보면 고작 30분도 안 지난거죠. 언제부터요? 3개월 정도? 한 주일에 사나흘은 아주 꼬박 밤을 샙니다……”

이어지는 한숨과 침묵. 메스나 필로폰, 코케인 같은 각성제 마약남용이나 갑상선기능항진 같은 생리적 문제가 아니라면 ‘불면장애’를 판단하는 정신의학 진단기준을 만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잠 못 드는 한밤중의 고독은, 엇갈린 애증의 여자 친구를 못 잊는다는 A만의 괴로움은 아니다. 인구 기반으로 성인 인구 1/3은 불면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니, 나 사는 집 골목이나 아파트 복도를 떠올리면 세 집 가운데 하나씩, 아니면 한 집 어른 세 식구 가운데 한명씩은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중이다.

게다가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 가운데 반 정도는 다른 정신질환을 함께 나타낸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진단 기준 가운데도 밤마다 천 마리씩 양을 세거나, 또는 하루 종일 잠이 너무 쏟아져 못살겠다는 수면교란이 포함되어 있다.

상담 세션이 이어지면서 불면증과 더불어 A를 힘들게 하고 있는 불안장애 증세가 함께 드러났다. 10년 근속 직장에서 해고될 것 같은 불안감, 웬일인지 안절부절 못하고 마치 자신이 낭떠러지 끝자락에 서있는 느낌. 하루 종일 피곤하고 온몸의 근육들이 긴장되어 업무보고를 망치고,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바람에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기 일쑤라고 털어놓았다.

A가 처음 상담실에 오던 날, “여기는 침대가 없네요?”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마도 프로이드의 자유 연상에 근거하는 정신분석 이미지를 떠올린 모양이다. 환자를 편안히 침대에 눕힌 채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런 형식 없이 말하도록 하고, 정신 분석가는 뒤에서 목소리로만 묻거나 듣거나 하는 방식. 영화 장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침대 위의 세션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기조로 한다.

프로이드가 자신의 진료실에서 사용하던 자주색의 낡은 벨벳 침대는 비엔나의 프로이드 뮤지엄에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지만, 일반상담실에는 침대가 없다. 내담자의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일주일에 한번, 의자나 소파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왜 내 마음이 내 맘대로 안 되는지, 인지왜곡들을 함께 탐색하는 동안 A의 불안장애 증세는 많이 회복되어 수면시간도 조금씩 늘어갔다.

불면증은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를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가 있으면 불면이 생기기도 한다. 수면제 말고,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조언들이 나와 있으나, 뭐니 뭐니 해도 ‘침대에서는 제발 잠만 잘 것’이 금과옥조다. 누워서 팔이 저리도록 스마트 폰, 베개에 턱 괴고 아이패드 영화보기, 침대 위의 군것질은 불면을 각오하고 할 일이다.

USC 출신의 장난꾸러기 허프 포스트 기자 켈시 보렌슨은 차라리 ‘혼자 자라’고 권한다. 그녀가 말하는 수면 장애물은 파트너의 코 골기, 부시럭 대는 잠버릇, 내 얼굴을 덮치는 여자 친구의 긴 생머리, 파트너가 돌아누울 때 침대의 꿀렁거림 등등. 눈치 볼 것 없이 베개를 들고 공간 이동! 질 좋은 수면은 침대 위의 정신분석보다, 상담실의 토크 떼라피보다 달콤하고 파워풀한 셀프케어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