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는 ‘몰래’

바람피우는 사람이 배우자에게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는 ‘몰래’이다. 들키는 순간부터 더티 플레이다. 고고한 사랑이라 우겨도 한낱 욕정으로, ‘우리 사이는 달라!’ 하던 품위는 무모하고 눈먼 질투로 변한다.

일부러 드러내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 사강의 소설 속에서 남편은 연인과 불같은 정사를 치른 후, 새벽 두시의 귀가를 아내가 부디 알아주기 바라며 현관문을 소리 나게 쾅! 닫는다. ‘제발 분노해줘! 그리고 결혼이라는 속박에서 나를 풀어줘!’ 마음 떠난 남자의 강렬한 메시지다. 2층 침실, 불 끄고 누운 아내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킨 채 그 소리를 못 듣기로 한다. 아직 결심이 안 섰다.

독자 흡인력 최강자, 시드니 셸던이 그려낸 주인공 여자들은 모두 출중하다. 애가 타도록 괴로운 지경으로 몰아가는 뇌쇄(惱殺)의 절정들만 출연한다. 고혹적 외모에 지적 매력! 그런 아내를 두고도 남편은 외도를 한다. 혼외정사가 들통 났을 때, 남편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릴 넘치던 나의 외도는 끝장이야. 너무 완벽해서 나를 숨 막히게 하던 아내를 더 이상 골려줄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이지.”

외도는 일부일처제에서 성립된다. 질투와 라이벌 의식도 일부일처제에서 비롯되었다. 포유류 4,700종 가운데 일부일처제를 채택한 동물은 대다수 인간을 비롯해 늑대, 여우 등 약 3퍼센트다. 일부다처 또는 일처다부 등 어떤 형태로 갈 것인가는 개개의 욕구와 문화에 따라 결정된다. 모순이지만 암컷은 이론적으로 수컷이 많으면 좋겠고, 수컷은 반대로 암컷이 많았으면 한다. 일부일처제는 양쪽이 공평하게 타협을 본 결과라는 게 동물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포유류가 초기에 한동안 함께 지내는 것은 섹스를 위해서, 혹은 자식 양육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각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떠난다는 게 최근까지의 동물행동학 연구 결과이다.

배우자의 외도로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혼란된 감정 속에서 질문한다. 내 아내가 왜 그런 짓을 한거죠?(남성) 내가 어디가 모자라서 남편이 딴 여자한테 눈을 돌리냐구요.(여성) 왜 중간에 그만두지 않았을까요? 끝없이 밀려드는 왜? 왜? 왜? 는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분노 감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커플 상담에서도 서로에게 퍼붓는 질문형 대사는 반복된다. 왜 날 속여? 애들 생각은 안 났어? 이혼을 원해? 걔가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보다 잘 났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비난 속에는 아픔이 숨어있다. 분노의 발톱이다. 상대방이 ‘아아~~ 그게 왜 그랬느냐 하면~~’하고 구구절절 사유를 설명한다고 해서 얽힌 감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도 관련 상담에서 상담자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불륜 당사자의 정신적 병리를 탐색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많은 경우, 낮은 자존감을 발견한다. 이들은 누군가의 칭찬과 인정을 끝없이 요구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아직도 자신이 매력적이라 인정받고 싶다. 끝없는 성공, 권력, 탁월성,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특징이다.

사회 규범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반사회성 성격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의 고통이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우울감, 관계 중독, 성적 트라우마, 성적 흥분을 위하여 끝없이 새로운 상대를 필요로 하는 섹스 중독에 기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불륜은 ‘몰래’가 보장되는 동안만 달콤하다. 일부일처 규범 안에서 불륜은 상대에 대한 잔인한 배신이다. 상담과정에서는 본인이 진정으로 원한 게 무엇이었는가 한 걸음씩 내면으로 들어가 보게 된다. 여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그 과정은 아프다.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위기를 또 다른 성숙의 기회로 바꾼다. 성숙이 두려우면 ‘몰래’ 끝내고 말 일이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