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야, 잘 가!
위탁아동으로 우리 집에 왔을 때 윌리(가명)는 7살이었다. 이미 어둑해진 시간이었는데 마구 헝클어진 곱슬머리, 조그만 얼굴에 얼룩진 눈물 자국이 현관 불빛을 등지고 섰는데도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긴 앞으로 네가 지내게 될 킴 패밀리의 집이다.” 소셜 워커가 윌리에게 설명했다. 그가 윌리의 작은 어깨를 안으로 밀어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그 자리에 밤새 서있을 것만 같았다.
“하이, 윌리! 어서 와. 친구를 소개해줄게.” 저녁을 차리면서 동갑내기 나의 아들을 불렀다. 윌리는 식탁 앞에서 숟가락도 들지 않고 자기 발등만 내려다보았다. 아들이 오랜 친구에게 하듯 말했다. “지금 밥 안 먹고 싶구나? 그러면 나도 나중에 먹을래. 내 방으로 올라가서 놀까?” 그러자 윌리의 숙인 얼굴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식탁 위로 툭! 떨어졌다.
그날 낮, 학교에서 돌아온 윌리는 아파트 거실 바닥에 엄마가 기절해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와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빠는 옆에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3살 동생은 울다 지쳤는지 형의 얼굴을 보고도 멍하니 아무 표정이 없었다. 이웃의 도움으로 경찰과 911과 아동보호국 직원이 도착하고, 윌리와 동생은 소셜 워커에 의해 각기 다른 위탁가정에 소개되었다.
아들과 한 방을 쓰게 된 윌리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방문 앞에 가보면 가느다란 불빛과 두런두런 두 아이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튿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방에 들어가 보니 나란히 붙여놓은 두 개의 작은 침대 머리맡에 눈물에 젖은 티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렇게 윌리의 위탁가정 생활은 시작이 되었다. 윌리는 또래인 아들에게 먼저 마음을 트고 조금씩 적응해 갔다. 어느 날, 나와 둘만 있게 되었을 때 아들이 말했다.
“엄마, 윌리가 그러는데 자기 때문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게 되는 게 너무 슬프대. 자기가 말을 안 들어서 아빠가 속상하니까 술 마시고 엄마를 때린 거래. 자기가 잘못했다고 빌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거래. 딴 애들 백팩은 다 새 건데 자기는 1학년 때 쓰던 거 또 쓰라고 해서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대. 자기가 그날 아침에 잘못 했던 거 생각할 때마다 죽어버리고 싶대…”
예일대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자녀(7-10세 그룹)가 받는 부모 이혼의 스트레스는, 부모의 죽음을 10으로 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인 9를 나타낸다. 처음에는 충격, 이어지는 분노, 그리고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한 뒤에야 마침내 수용의 단계로 넘어가지만, 때로는 중간 단계에 머문 채 힘든 성장기를 보낸다.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든 이혼할 가능성이 생기면, 자녀는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이 과정 중 자녀가 느끼는 스트레스에는, 자신이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 혹은 부모 중 하나가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소셜 워커와 상의 끝에 어렵사리 양육권 소유자인 부모의 동의를 얻어 윌리는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픽업하러 가보면 상담실 문을 열고 나오는 윌리의 두 눈은 늘 퉁퉁 부어 있곤 하였다. 1년 가까이 지나, 윌리는 우리 집을 떠났다. 부모는 결국 이혼을 하였고, 어느 쪽도 아이들을 키울만한 형편이 못되어 한국의 친척 집에 임시로 맡겨진다고 전해 들었다.
윌리가 떠나던 날, 아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던 게임기를 윌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윌리도 아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남겼다. 사진 뒷면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어서 고마워. 그러나 앞으로는 절대로 울지 않을거야. 약속! 친구, 윌리.”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