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 헤어져
A는 화려한 미모의 30대 여성이다. 열세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어머니는 딸을 야단쳤다. “너는 우리 집안의 수치다. 절대 입 밖에 내지 말아라!” 그리고는 딸을 멀리 타주의 기숙학교로 보냈다.
이후 A는 우울증 진단과 함께 5번의 자살시도가 있었고 남학생들과 마약파티, 무분별한 섹스에 탐닉하다가 얼마 안 가 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서곤 했다. 섹스 후에는 상대남자에게 “널 위해 내 심장을 바치겠다.”며 매달리기도 하고, “죽어도 못 헤어져!” 소리를 지르며 파트너가 보는 앞에서 칼로 자해를 했다.
최근 또 한번의 자살시도 이후 A는 병원응급실을 통해 상담전문가와 만나게 되었다. 상담 도중 눈물을 흘리다가 갑자기 남성 심리상담사를 포옹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를 보여 이후 다른 전문가에게 보내졌다. 그녀에게 헤어짐은 곧 버림받는다는 의미의 끔찍한 공포이다.
A가 아니더라도 사실 이별은 쓰리고 아프다. 연인과의 작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불교에서는 애별리고(愛別離苦)라 이름 하였다. 인생길 지나는 동안 몸이 짊어질 고통이 생-로-병-사 라면, 여기에 마음의 고통 4가지를 더했다. 사랑하는 이를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헤어져야 하는 아픔, 밉고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괴로움, 갈망하여도 얻지 못하는 안타까움, 마음에서 들끓는 오음(五陰)까지, 사랑의 환희는 찰나이고 헤어짐은 순간마다 고통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끌어안느냐, 자살이나 자해 같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정신의학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정신의학적 분류로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애별리고’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나머지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는 점이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거나 반대로 그들을 먼저 떠나버리기도 한다. 속으로는 함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배반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혹은 상상 속 두려움 때문에 애정이 시작될 때 이별을 고한다.
대인 관계 역시 불안정하다. 상대방을 우상으로 받들다가 다음 순간에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평가 절하한다. 감정조절이 어려워 드라마틱하게 양극단을 오간다. 자신의 정체성을 왜곡하며 늘 공허함에 시달린다. 격렬한 충동성 때문에 위험한 섹스에 몰입하기도 하고 도박, 약물남용, 충동적 소비 등 무분별한 행동을 한다.
이런 자극적 특징 때문에 영화 소재로도 여러 번 다루어졌는데 ‘치명적 매력’(1987, Fatal Attraction)은 완전 고전이고, 프랑스판 숨 막히는 사랑 ‘베티 블루’(2000, Betty Blue), 김혜수가 열연한 ‘얼굴 없는 미녀’(2004) 등이 경계성 성격장애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성격장애를 가진 환자들의 4분의 3 정도는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는다.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도 일반인에 비해 100배나 높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의 학대 경험이나 분리, 또는 1~3세 때 어머니를 향한 양가적 감정 혼란 때문에 ‘경계성 성격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론은 마가렛 말러의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으로 설명이 된다.
유아시절 아기는 엄마가 곁에 있을 땐 좋은 엄마, 떨어져 있을 땐 나쁜 엄마, 욕구를 충족해줄 땐 좋은 엄마, 안 들어주면 나쁜 엄마… 를 반복하면서 엄마와 분리되었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화해기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 과정을 연습하는 동안, 자신이 엄마와 한 몸이 아니라 개별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엄마를 향한 일관된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엄마가 옆에 없어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 고정된 이미지를 상실하면 삶 전체를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주변에 이와 비슷한 사람이 문득 떠오른다면, 전문가를 찾도록 곁에서 도와줄 것을 권한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