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아니고 중독일걸?

“술이 쎄긴 한데 그렇다고 알콜중독은 아니겠죠?”

매일 술술술, DUI 경력 2차례, 상사와의 싸움질로 해고된 A씨는 중독일까, 다만 술에 대한 몰입일까? 정신병리에서는 알코올과 관련, 몇가지 카테고리로 진단기준을 나누어놓고 있다. “딱 한병만 더하고 그만 한다니까”(사용장애) “엉? 내 차 누가 옴겼서? 악까 여기 세웠떠. 나 혀 안 꼬여”(중독장애) “지금 손 떠는거 아냐. 더워서 땀 나는거야”(금단장애) 등이다.

그러면 중독과 몰입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만하고 싶을 때 그만할 수 있는 자기통제의 문제도 하나의 기준이다. 강박적인 사용, 조절능력 실패, 일상에서 부정적인 결과 초래가 있는지 짚어보면 된다. 얼마 전 K타운에서 음주 체크 포인트를 지나게 된 B씨가 측정기를 바라보며 경찰에 항의했다는 말, “우쒸, 자꾸 나한테만 마이크 돌아오네. 벌써 세곡이나 불렀는데…”

중독치료기관에서 일할 때 싱싱한 신종 마약 정보는 클라이언트를 통해 얻곤 하였다. 새로 유행하는 마약, 제조 방법, 약물검사에 안 들키는 기상천외한 방법… 모르핀보다 10배 정도 강력한 ‘핑크’(U-47700)는 하얀색 또는 연분홍빛 고운가루다.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크레이텀도 이미 미정부 마약통제국 자료로 받아본지 10년 이상 되었다.

자기 집 약장에 있던 알약 캡슐을 비우고 그 안에 원하는 가루로 채워 넣으면 감쪽같은 타이레놀 진통제다. “머리 아프니? 감기기운 있으면 어서 타이레놀 먹고 학교 가렴.” 부모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귓전에도 안 들린다. 새벽 두시. 아들 방에 불이 켜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똑똑 노크한다. “울아들, 시험공부 하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들 얼굴은 피로한 기색도 없이 웃음 진 눈매에 멍한 행복감이 넘친다. 엄마가 문을 닫고 나가면 아이는 다시 빳빳한 20불짜리 지폐를 돌돌 말아 한쪽 끝을 콧구멍에 대고 쭉 찢은 교과서 한 페이지에 널린 가루를 흡입한다. “오우, 헤븐!”

배스 솔트로 알려진 크리스털 결정체 모양 때문에 ‘자갈’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플래카는 초등학생부터 청소년층이 요즘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전자담배에 넣어 피운다. 부모가 알았을 때는 좀 늦었다고 보면 맞다. 아이도 어른도 손쉽고 값싸게 얻어서 값비싸게 몸을 망치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은 닉네임도 다양하다. 아이스, 스피드, 야바, 샤부, 스토브탑…

“얼마 주고 샀니?” 상담실을 찾아온 나이 어린 클라이언트에게 물었다. “싱글!”(1달러). 처음엔 공짜, 두번째는 1달러, 세번째는 10달러로 값이 뛴다. 이미 중독단계에 접어든 아이는 갈망으로 온몸의 세포가 다 떨린다. 판매책이 아이에게 속삭인다. “뭐라고? 부모가 용돈을 끊었어? 걱정 마. 너한테만 돈 안 받고 10개 줄게. 5개는 네가 하고 나머진 팔아서 나한테 갚아주면 되지 뭐.” 내 품안의 귀엽고 착한 자식이 어느새 마약판매상이 되어가게 만드는 흔한 수법이다.

모든 약물은 과다복용 할 때 머리 속 보상체계를 직접 활성화한다. 그 작용이 너무 강해서 뇌의 정상신호들은 무시된다. 여기엔 도박도 포함된다. 우리 말 표현으로는 너무 점잖게 들리는 ‘고양감’(High), 즉 쾌락이 거기 있다.

중독으로 나 역시 가까운 친구를 셋이나 잃었다. 한 친구는 마약으로 인한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다가 20대에 자살로, 하나는 정신병동 장기입원으로, 또 하나는 알코올로 인한 우울증 끝에 중독자시설에 수용되었다.

대학시절, 히스테리 조교의 눈을 피해 빼먹은 강의를 서로 메꿔주고 연애의 비밀을 나누던 친구, 인생 끝까지 어깨동무하며 세상살이 굴곡들을 동행할 것 같던 친구들이었다. 그들도 행복을 추구했다. 때로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가짜행복이었다. 수용적인 태도와 감정적인 집착을 줄이는 활동은 중독을 막는다. 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병이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