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좀 갈아 끼워주세요
한국인의 이혼 사유 1위는 성격차이다. 2위의 경제문제와 비교해 한참 차이나는 압도적 1위다. 그러나 한국인의 ‘성격차이’는 대외용 멘트인 경우가 많다. 속사정을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성격차이’라고 대답한다.
남녀 간에 성격이 같으면 행복했을까? “제가 바라는 남편감은요… 이해심 많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언제나 나를 세심하게 보살펴주고, 대범하지만 작은 일에도 신경써주는…” 그런 남편은 세상에 없다. 세심하면서 대범하다는 기대 자체가 모호하다.
제3자에게 가능하던 이해심이, 아내를 향해서도 발휘되기란 쉽지 않다. 남자가 바라는 아내의 성격은 어떨까? “예쁘고(항상 1위), 언제나 나만 바라보고, 무슨 일을 해도 믿어주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여자라면…” 이것은 실현가능한 바램일까? 상담실에서 만난 부인들은 말한다. 한번에 거금을 쥔다고 도박을 일삼는데 계속 믿어달라고요? 툭하면 손찌검 하는 남편을? 부부 침실에 애인을 끌고 와서 마약을 한 남자를 이해하라고요?
평생 이어지는 행동양식(life-long behavioral pattern)을 우리는 성격이라 부른다. 학자에 따라 성격유형을 나누는 방식도 다르고 관점도 다양하다. 많은 학자들은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성격유형 자체에 부정적이다. 그러니 인터넷에 떠도는 성격검사는 완전 심심풀이다.
흔히 알고 있는 다혈질, 점액질, 우울질 등의 분류는 무려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가 처음 시도했다. 20세기에 이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드의 시대가 왔다. 그는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이, 파괴적 충동과 벌이는 투쟁의 결과’를 성격이라고 이름 지었다.
인간은 누구나 내적 갈등과 외적인 요구를 다루는 저마다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이를 흔히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라 부른다. 방어기제의 결과물이 곧 성격이다. 그 사람 중풍으로 쓰러진게 결국은 다 나 때문이야…라고 매사를 자신에게 ‘투사’하는 타입은 우울, 결혼생활이 요모양 요꼴인건 다 그 웬수 때문…으로 밀어붙인다면 편견, 의심, 오해, 경계심 많은 성격을 나타낼 수 있다. 못된 친구 꾐에 빠져서 마약에 손 댄거지 착한 내 자식이 그럴 리가 없어… 매사를 ‘부인’하는 방식, 결국은 본인의 아픈 상처를 스스로 핥고 있는게 아닌가.
하기 싫은 일은 잊어먹는 방식으로 ‘억압’해버릴 수도 있고, 이솝우화처럼 포도가 시어서 안 먹는다는 ‘합리화’도 결국은 살아남는 방식이자 성격이다.
짝사랑하는 동료에게 더 쌀쌀맞게, 미워하는 선배에게 더 복종적이며 정중하게 군다면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을 하는 중이고, 회사에서 깨지고 집에 와서 밥상을 뒤엎는다거나, 프로포즈에 거절당한 남자가 다음 달에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리는 경우를 ‘전치’(Displacement)라고 부르며, 어려서 동생을 본 형이 갑자기 오줌을 싸는 행동은 ‘퇴행’함으로써 살아남겠다는 방어기제일 수 있다.
개학 첫날 배 아픈 아이, 시댁 가는 명절이면 온몸이 쑤시는 며느리 경우를 우리는 ‘신체화’라고 부른다. 남편이 차에 시동 걸고 기다리는데, 더 천천히 눈썹붙이고 있는 아내, 업무량이 늘어날 것 같을 때 일부러 바쁜 척 하는 신입사원은 ‘수동공격형’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중인지 모른다.
컴퓨터게임에서는 플레이하는 사람이 그 주인공들의 성격을 지정할 수 있다. 몇몇 성인 게임들도 상대 여성의 성격을 차트에서 맘대로 골라 클릭만 하면 된다. 온순, 복종, 수줍음… 게임이 싫증나면 다시 바꿔 끼운다. 활달, 리더십, 말괄량이로… 이같은 가상현실 말고, 사람 사는 이 세상에서도 못된 성격 하나, 다정다감 보들보들한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보세요! 거기 심리상담센터죠? 제 남편 급한 성질 좀 느긋한 걸루 갈아 끼우러 가도 될까요?” 꿈은 아니다. 방어기제를 바꾸면 성격이 바뀐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