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으로 돌리는 진짜 이유

남편, 혹은 아내가 남처럼 느껴진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첫눈에 반했던, 눈 깜빡이는 동안에도 그립던, 종일 같이 있어도 헤어지기 아쉽던 그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다. 싱글이 외로운게 아니라 둘이라 더욱 외롭다는게 부부 상담에 오는 커플들의 고백이다.

‘너를 안다’는게 무슨 뜻일까? 나의 언행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반응이 예측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게 곧 ‘아는 사이’라는게 심리학의 설명이다. “어젯밤 내 생각했어?”라는 남성 A의 문자에 “오빠 최고!”라는 여성 B의 답이 돌아온다면 그들은 분명 아는 사이다. 그랬던 그이가… 그랬던 그녀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고 마치 모르는 타인처럼 느껴질 때, 흔히 상대방을 탓한다.

연인들이 지나간 날을 되돌아보며 불일치를 경험하는 것은 대개 ‘자기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 때문이다. 둘이 쌓아왔던 달콤한 시간과 인연은 닻줄보다 질겨서 죽음이 갈라놓는 날까지 함께 할 거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혼이나 연애 같은 공동 활동을 하고난 뒤, 그 결과를 놓고 자기 자신의 공헌을 과장하는 경향이 짙다. 본래 자기역할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말일까?

심리학자 F. 시콜라이는 4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자녀양육, 애정표현, 식사준비 등 집안 일, 생일 기억하고 이벤트하기 등 20가지 활동에 대한 부부 각자의 책임량을 질문한 결과, 16가지 항목에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편향’을 보였다.

연애 중인 커플들도 둘의 관계에서 자기가 상대방보다 더 헌신하고 공헌했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사온 꽃다발이나 ‘알라븅~’ 고백은 까맣게 잊고서…. 자신의 행동은 더 쉽게 돌아볼 수 있는게 당연지사, 인간은 결국 ‘자기중심적 편향’에 이끌려 살아간다는 게 시콜라이 박사의 결론이다.

문제는 쌍방이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있다. 자기중심적 착각이다. 이 착각은 자존감에 위로를 준다. 부부든 연인이든 자기를 둘러싼 상황 안에서 각자 선택적으로 회상한다. 과거의 고난을 과장하여 문제에 반영하거나 투영시킨다. 자신의 성과를 더 크게 생각하고, 자기 능력과 성취를 과장하도록 동기 부여된다.

성공을 실패보다 더 자기덕분으로 생각하고, 실패는 자기 밖 환경의 힘에 미루는 인간의 경향을 사회심리학자들은 ‘긍정적 착각’(Positive Illusion)이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별 근거도 없이 가지고 사는 ‘내가 남보다 낫다’라는 생각은 여러 실험을 거쳐 증명되었는데, 이 우월감의 착각 안에 객관성은 없다. 혼자 그렇게 여길 뿐이다.

심리학자 조나단 브라운의 실험에서도 정상적인 인간의 마음은 주어진 현실 안에서 긍정적 여과장치를 통과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착각이 클수록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남은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즐거운 착각’은 아내만 하는게 아니라 남편도 동시에 하고, ‘아무렴, 우리 결혼이 여기까지 온 것도 다 내 덕’이라는 생각 역시 양쪽 모두의 머릿속에 들어있다.

“내 맘을 알기나 해?”로 시작되는 부부와 연인의 갈등은 자기중심적 편향에서 비롯된다. “죽도록 고생한 건 나지. 당신이 한게 뭐있어?” 이 착각 덕분에 각자 자신의 자존감을 붙들고 오늘을 버티며 내일의 성취지향 행동을 이어가기도 하니, ‘남 탓’이야말로 착각 치고는 정말 긍정적이지 않은가!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